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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파서 머리를 잘라버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관물대에 머리를 계속 박았더니 저 XX 보라고. 발광하는 거 보라고 (하더라고요).”
“병원 가려고 간부를 찾아갔어요. 근데 그 앞에선 죽을 상 하고 있을 수가 없잖아요. 정신 차리고 말했더니 ‘이 XX 기력 있네’라면서 병원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넌 그냥 체한 거라고. 약 먹고 쉬면 나을 테니까 가만있으라고. 자기가 손 따주겠다고요.”
지난 2013년 1월 말, 서울에 있는 한 종합병원에서 뇌수술을 앞둔 현역 군인 한 명을 만났습니다. 강원도 홍천 11사단 소속. 전역을 열 달 남겨둔 상병. 군부대에 있어야 할 그가 서울 민간 병원에 나와 있는 이유는 악성 뇌종양 때문이었습니다. 당장 제거수술을 해도 생존확률이 높지 않다고 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불과 며칠 전까지 혹한기 훈련을 다녀오고 경계 근무를 섰다고 말했습니다. 엄청난 두통에 시달리며 수차례 호소했지만 군은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처방된 건 배가 아플 때나 머리가 아플 때나 늘 똑같이 주어지던 진통제 몇 알뿐. 몇 주를 고통스러워하던 그는 결국 개인 휴가를 써서 민간병원을 찾았고 CT 촬영 결과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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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기자님이 이해를 못하시는 겁니다. 여기 구성원들은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장교와 병사, 선임과 후임 간에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 형제지간과 같단 말입니다. 아들놈이 아프다니까 걱정되는 마음에 중대장이 직접 손을 따준 건데 그게 도대체 무슨 잘못입니까?”
전화를 붙들고 한참을 싸웠습니다. 아프다는 병사가 있으면 병원에 보내야지 왜 마음대로 판단하느냐고, 군의관도 아닌 지휘관이 무슨 근거로 처방을 내렸느냐고, 엄밀히 말하면 불법 의료행위나 다름없다고 쏘아 붙이자 사단 정훈장교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다. 이곳엔 이곳만의 문화가 있다. 아프다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일일이 다 검사하느냐. 그는 군 경험이 없는 저를 순식간에 타자화하며 군세계의 논리를 펼쳤습니다. 그 순간부터 넘을 수 없는 벽이 형성됐습니다. 아프면 약을 먹고, 나아지지 않으면 병원에 가고, 그래도 증상이 심각하면 상급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 게 상식인 민간인과 아파도 참고 견디길 강요받는 대한민국 군 사이 간극은 결코 쉽게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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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시간이) 8개월, 10개월이래요. 의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봐도 CT 사진을 보니까 정상적인 사람이랑 이렇게 다른데. 애를 방치해놓고 얼마나 아팠겠어요. 누구 하나 관심 갖고 봐주기라도 했으면.. 이게 인간이 할 짓입니까?”
울분에 찬 가족들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귀한 막내 놈 군대 보내놨더니 멀쩡했던 애가 다 죽어가고 있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뭐라도 할 텐데 이제 손쓰기에도 늦었다고 한다. 귀한 아들, 귀한 동생이 죽을병에 걸렸단 사실보다 화나는 건 그들이 마주한 군의 태도였습니다. '뇌종양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라면 갑자기 쓰러지거나 의식불명이 되는 건데 두통이 있다고 어떻게 뇌종양을 의심할 수 있었겠느냐'는 뻔뻔한 반응. 군 병원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자 ‘우리도 CT만 찍어봤으면 병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염치없는 반응.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이런 사람들한테 애를 맡겨놨던 거구나. 애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랑하는 가족을 군에 보내봤던 한 사람으로서 신 상병 가족들의 분노와 괴로움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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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이가 아프고 나서 SBS 뉴스에 나왔잖아요. 기사에 나온 인터뷰를 인용해서 애들이 두통 있다고 말하면 너도 걔처럼 관물대에 머리 박고 싶으냐고 얘기하더라고요. 비꼬듯이.”
그 해 여름, 신성민 상병은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뇌수술 직전 병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던 그를, 다섯 달 만에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으로 마주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늦은 밤 홀로 찾아간 빈소는 너무 쓸쓸했습니다. 새벽에 숨을 거두고 한 나절이 지나도록 부대 지휘관들에겐 연락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이미 군을 전역해 민간인 신분으로 빈소를 찾은 신 상병 선임들의 얘기는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신 상병 보도가 나간 뒤 지휘관들은 부대 망신을 시켰다는 식으로 그를 비꼬았다고 합니다. ‘자식 같은 마음으로 챙겼다’던 지휘관들은 신 상병의 죽음에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 최근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신 상병 취재 기록을 다시 꺼내봤습니다. 인터뷰를 돌려보고 정리해놨던 사건일지를 다시 읽다 보니 당시 느꼈던 감정들도 하나둘 되살아났습니다. 갓 수습 딱지를 떼고 정식기자 생활을 시작한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꽤나 순진했던 생각이지만 그때 저는 부대 지휘관이며 정훈장교, 군의관, 국방부 직원들과 수차례 핏대를 세우고 통화하면서 제가 갖고 있는 상식으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 믿었습니다. 물론 통화를 마치고 나면 항상 답답한 마음만 깊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들을 설득할 수 없었던 건, 제가 마주했던 상대가 그저 생각이 다른 개개인이 아니라 ‘군’이라는 거대한 성벽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사가 나간 뒤 관련자 몇 명이 내부적으로 처벌받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지만 결국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군 의료 시스템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고 철옹성 같은 군 내부 체계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선임에게든 지휘관에게든 군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는 사람들은 줄을 이었고 구제받지 못한 채 스러져갔습니다.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사고가 불거질 때마다 사람만 갈아치울 뿐 문제가 되는 구조는 제대로 건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군대 문화에는 누가 들어가더라도 윤 일병이나 신 상병 같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임 병장 같은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였던 누군가가 작대기 두어 개를 얹고 1년 만에 가해자로 바뀌는 상황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군 개혁을 위해선 관련자 엄벌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쌓아올린 성벽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철옹성 같은 군 조직의 문을 열고 외부의 감시와 견제를 받아들여야만 고여 있던 썩은 물이 흘러나가고 새로 들어오게 될 맑은 물이 썩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