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가 1000m, 즉 1킬로미터를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깊은 동굴이 있습니다. 상상이 잘 안 되신다고요? 흔히들 깊다, 깊다하는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이 깊이가 47m, 아파트로 치면 16층 높이 정도 됩니다. 그러니 1000m 깊이의 동굴이라고 하면 약 여의도역의 20배, 아파트로 치면 320층 아래에 있는 셈입니다. 어마어마하죠. 게다가 동굴로 들어가는 길은 너무 비좁아서 날씬한 사람만 겨우 운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생각나는 문장이네요. 하하하) 한 동굴 탐사가가 동료 두 명과 함께 이 어둡고 깊고 좁은 동굴 탐사에 나섭니다. 몇 년 전 이 동굴을 발견한 후 다시 나선 탐사입니다. 협곡과 수직 통로로 된 동굴을 이번에는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까, 이 남성은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조심조심 동굴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탐사에 나선 지 하루가 채 안 돼 불행이 닥칩니다. 떨어지는 돌을 미처 피하지 못해 머리를 크게 다친 겁니다. 동굴 바닥에 누워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남성, 그는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요?
상상이 아닙니다. 지난 일요일 독일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입니다.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52살 남성이 동굴 탐사 중에 크게 다쳐 현재 구조 작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뭐, 다친 사람을 구조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다반사지만 이 남성을 구조하기 위한 노력들을 살펴보다보니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일단, 이 남성이 다쳤다는 사실을 알린 동료의 헌신적인 노력입니다. 앞서 적었듯 이 남성은 동료 두 명과 함께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크게 다치면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동료들은 놀라운 희생정신을 발휘합니다. 한 명은 다친 남성의 옆에 남아 보살피고, 다른 한 명이 필사적으로 동굴을 기어올라 구조 요청을 한 겁니다.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혼자서 동굴을 올라온 것만 12시간, 기진맥진 했겠지만 그 덕분에 구조대가 투입될 수 있었습니다.
구조대의 면면도 놀랍습니다. 이번 구조 작전에는 독일 외에도 이웃 나라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가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3개국이 함께하고 있는 겁니다. 사고가 난 동굴은 독일 남동부 알프스 산맥의 운테스베르크라는 산에 있습니다. 지표면에서부터 1km 아래에 있는 남성을 구하려면 먼저 라펠을 이용해 수직으로 하강하는 위험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도 버거운데 돌이 계속 떨어지고, 심지어 물웅덩이마저 있어서 상당한 위험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 나라가 함께 나섰다는 건 알프스가 이 세 나라에 걸쳐 있다는 지리적인 요인도 있지만, 동굴 구조가 어렵다는 사실을 공감하며 전문가를 파견하도록 돕는 각 나라들의 적극적인 태도가 한 몫 하고 있습니다.
현재 구조대는 크게 세 팀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 팀은 다친 남성을 치료할 준비를, 또 다른 한 팀은 동굴 안에 들어가는 사람과 구조 본부 사이의 통신을 점검하고 장비를 설치하는 일을 맡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팀은 구조대의 상태를 살피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구조대는 지금까지 300m 지점에 기지국을 설치해 통신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의사도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남성을 어떻게든 끌어 올려서 상시 대기 중인 헬기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하기만 하면 될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구조됐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건강한 구조대원 한 명이 온전히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데 다친 사람까지 지상으로 끌고 올라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다친 남성은 앞으로도 며칠을 어두운 동굴 안에서 고통스럽게 보내야 할지도 모르죠. 구조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럽지 않으신가요? 저는 부럽습니다.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수많은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구조에 나설 잠수 전문 인력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지 않아 뒤늦게야 소집령을 내리는 등 우왕좌왕했습니다. ‘특단의 도움을 요청할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부의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도움을 꼭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동굴에서 사고가 나자마자 유럽 동굴 구조 조직이 가동되고, 하루 만에 전문 인력을 현장에 보낼 수 있는 유기적인 체계가 부럽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단 한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만약 이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혼자서 상상해봅니다. 제가 비관적인 건지, 좋은 모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