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국(國)이라는 글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커다란 입 구(口)안에 작은 입 구(口)와 창 과(戈)가 들어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여기서 커다란 입 구(口)라는 글자는 성곽이나 나라의 국경을, 작은 입 구(口)는 백성을 의미한다고 하죠. 그래서 보통 영토 안에 사는 백성을 창을 들고 지키는 것이 나라의 의미라고 많이 해석합니다.
그렇게 보면, 중국은 참 지켜야 할 게 많은 나라입니다. 세계 4위로 꼽히는 넓은 땅덩이, 그 안에 사는 사람은 또 어떤가요. 세계에서 가장 많은 13억 명의 인구가 와글와글 댑니다. 그런 중국이 어제와 오늘 미묘한 기류 속에 있습니다. 25년 전,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였던 학생과 노동자들을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했던, 천안문 사건 때문입니다.
줄지어 들어오는 탱크를 양복바지와 흰 와이셔츠를 입은 한 남성이 맨 몸으로 다다가 막아서는 모습, 아마 뉴스나 인터넷에서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그렇게 천안문 광장에 집결해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젊은 청춘들의 목소리에 중국 정부는 총으로 답했습니다. 군대를 동원한 강경진압을 주도했던 덩샤오핑 등은 승승장구했지만 반대했던 자오쯔양은 실각했습니다. 그 날 얼마나 많은 목숨이 스러졌는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집계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지식인이나 인권 운동가들은 이맘때면 가택 연금 당하고,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쓴 언론인들은 바로 체포됩니다. 천안문 사건이라는 단어는 물론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 날짜 (6.4), 천안문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지만 중국어로 6.4와 발음이 같은 단어조차 검색할 수 없습니다. 구글 검색조차 '만리방화벽'이라고 부르는 중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에 막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주변 국가들의 시선은 당연히 곱지 않습니다. UN인권 최고대표는 중국 정부가 당시 시위대에게 가한 폭력적인 억압의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했고, 타이완 총통도 재평가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일본 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자유와 기본적 인권의 존중, 법의 지배가 보장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밝히고 나설 정돕니다.
중국은 어떤 입장일까요?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3일 했던 정례 브리핑을 뜯어보면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훙레이 대변인은 천안문 사건에 대해 '중국 정부가 일찍이 결론 내린 일'이라는 한마디로 일축했습니다. 심지어 천안문 사건이라는 단어는 아예 쓰지 않은 채 정치풍파(風波)라고 표현했습니다. 재평가는커녕 언급하는 것조차 짜증스럽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천안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밖에서 소위 말하는 반체제 인사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며 이들을 범법자에 불과하다고 몰아세운 것입니다. 특히 중국은 법에 의거해서 일을 처리하고 있고, 중국의 사법체계는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천안문 사건과 관련해 중국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외신 기자들이 중국 정부의 민감한 부분을 정면으로 찔렀습니다. 중국 출신 예술가가 천안문 사건을 앞두고 구금된 이유를 물은 겁니다. 이에 대해 훙레이 대변인은 정확한 사실은 알지 못한다는 중국인 특유의 능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 답변을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중국의 관계 기관이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외신을 비롯해 인터넷을 통제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외국기자들도 중국의 법률을 지켜야한다는 말로 맞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정한 법률과 원칙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게 천안문 시위대 유가족이든 반체제 지식인이든 외신 기자든 상관없이 범법자로 처벌하는 나라가 중국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입니다. 그것도 전혀 주저함이 없이 말이죠.
아무리 중국이 잘 나간다고는 해도 이렇게 전 세계 외신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말을 한 배경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훙레이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개혁개방 30여 년 동안 세계가 주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냈다. 민주·법체계도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중국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의 길은 중국의 국가 상황과 인민의 근본 이익에 맞아떨어진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말은 어렵지만 중국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낸 데에는 중국식 사회주의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거죠.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말은 천안문 사건을 강경진압 했던 덩샤오핑이 했던 말입니다.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이념논쟁으로 공산당이 혼란스럽던 때에 개혁개방에 앞장섰던 덩샤오핑이 중국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라는 기막힌 개념을 들고 나오면서 이론상의 모순점을 상당 부분 없앴습니다. 아울러 지금의 시장경제가 발달된 (겉으로 보면 사회주의 국가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중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훙레이 대변인의 말은 한마디로 중국은 중국만의 사회주의로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까 간섭 말라는 이야깁니다.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50여 개 민족이 광활한 영토에 모여 살아가는 특성도 눈여겨 봐야합니다. 중국은 소수민족들을 영토에 편입시키는 과정이 부드럽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장위구르 지역 등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유혈이 낭자한 분리 독립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무시무시한 언론 통제로 잘 알려지고 있지는 않지만요) 분리 독립을 외치는 소수민족 거주지가 대부분 다른 나라와의 국경 지역인데다가 물리적인 면적이 상당하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한 민족이 분리 독립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다른 민족들이 도미노처럼 우수수 들고 일어나서 체제 붕괴까지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중국이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 한족을 강제 이주시키고 보조금과 교육 혜택을 주는 등 유화책을 상당 기간 쓰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내 편을 만들었다고 평가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공산당이 갖고 있는 강력한 힘으로 수상한 움직임을 찍어 누르고 있는 겁니다. 인구의 10%쯤 되는 소수민족도 저렇게 강하게 통제하는데 몇 안 되는 천안문 사건 관련자들 쯤이야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쉬운 상대에 속하겠죠.
당의 정통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힙니다. 사실 천안문 사건에 대해 사과하거나 이를 옳았던 일로 재평가 한다는 것은 곧 역대 당 지도부들이 잘못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구지 수십 년 전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서 당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거겠죠.
중국이 저렇게 위풍당당하게 G2의 명맥을 유지하는 한 천안문 사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사과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대로 된 언급조차 어려운 날들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포기는 이릅니다. 작은 움직임이 역사를 바꿔 왔으니까요. 다만,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