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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미국의 재난구조 훈련 현장을 지켜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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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면서 슬픔과 분노가 함께 교차합니다. 누구나 그랬을 겁니다. 3백여 명의 학생과 무고한 시민이 어처구니 없이 숨진 배경에는 돈벌이를 위해 구조변경을 제멋대로 하고 안전 조치하나 제대로 하지 않은 선사가 있었습니다. 또 승객들을 선실에 머물게 강요하고 자신들만 피하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선장과 선원들이 있었습니다.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초기 대응과 구조작업을 하지 못한 정부부처가 있었습니다.

SBS의 안전 시리즈를 위해 이것 저것 찾아보던 기자는 어제 미국의 US&R (Urban Search & Rescue : 수색 구조팀)의 합동 훈련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취재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에는 28개의 수색 구조팀이 있는데 이 가운데 캘리포니아에 있는 8개 팀이 합동 훈련을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1년에 두 번, 캘리포니아 5개 도시에서 24시간에 걸쳐서 훈련하는 행사인데, 20일이 바로 그날이었던 겁니다.

취재하기 전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훈련이 진행되는 다섯 곳의 거리가 적어도 1시간이상 떨어진 곳이었던 겁니다. 게다가 미국은 사전에 취재 허가를 받아야만 취재가 가능한데 LA 시내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서 오전 7시 반에 크리덴셜(취재허가증)을 나눠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벽 6시 반부터 움직여야 했던 겁니다. 이른 새벽 그곳에 가보니 소방서였습니다. 미국 현지 방송국 중계차들이 잔뜩 와 있었는데 그 앞에는 커다란 단상이 놓여있고 옆에는 천막도 하나 쳐 있었습니다.  행사를 주관하는 FEMA (재난관리국), LA 소방국, US&R 팀장 등이 차례로 훈련 개요를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1분전, 천막에서 에릭 카세티 LA시장이 보좌진을 잔뜩 이끌고 단상 옆 의자에 앉았습니다.

“제기랄... 시장 홍보를 위해 기자들을 잔뜩 부른 거였군. 어째 하는 꼬락서니가 한국하고 비슷하네.” 새벽부터 1시간씩 차를 몰고 나온 기자의 머리에 언뜻 스친 푸념이었습니다. “그래도 한국보다 연설은 짧아서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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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취파1

다섯 곳의 훈련 장소에서 가장 그럴듯하게 여겨진 곳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였습니다. 가보신 분도 있겠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 안에는 한국에도 개봉됐던 영화 ‘우주 전쟁’의 야외 세트장이 하나 있습니다. 톰 크루즈가 자녀들을 데리고 집에서 나왔는데 여객기가 집 앞에 추락해있고 온 마을이 폐허가 돼 있는 장면을 찍었던 곳입니다. 취재팀은 그곳에서 진행되는 훈련을 취재하기로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지 방송국들도 한결같이 그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3년 전 LA 여행 때 본적은 있지만 취재차 다시 들른 그곳은 말 그대로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장소는 제대로 골랐군. 화면이 아주 실감나겠는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한쪽 구석에서 분장사 5~6명이 몇몇 사람을 분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얼굴과 몸에 상처를 만들고 피를 흘리게 하는 특수 분장사들이었습니다. “어이구...이 사람들 봐라. 완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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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취파2

처음 취재 허가증을 받고 나서 현장으로 장소를 옮겨 도착한 게 10시쯤이었으니까 한 40분 가량은 운전해서 이동한 셈입니다. 그런데 또 다시 지루한 기다림이 계속됐습니다. “웬만큼 하고 빨리 시작하지. 왜들 이리 굼뜨나”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장면을 연출하려고 이렇게 준비들을 오래 하나?”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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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모여있던 취재팀이 대략 10여개 팀쯤 됐는데 누구 하나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기다림에 익숙한 나라니까요. 낮 12시가 되자 드디어 소방대장이 나와 US&R 훈련의 개요를 또 한번 설명하고 나서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여러분도 한국의 뉴스를 통해 한국 소방대원들의 훈련을 보신적이 있을 겁니다. 탑 위에서 점프해서 밧줄 타고 내려오고 활활 타는 건물에 소방 호스로 불을 끄고, 뒤집힌 차량에서 사람을 구해오는 등 일련의 시나리오에 따라 한 20~30분간 화려한 장면들을 연출해 줍니다. 취재도 쉽고 기사도 쉽게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래 준비하고 특수 분장까지 했으니 아마 저 비행기에서 점프하면서 내려오고 하늘에서 헬기가 날아오고 구조대원들이 막 뛰어다니면서 생존자를 구해내고 그러겠지?” 하지만, 완전 망상이었습니다. 수색 구조 팀이 조를 나눠 한 팀은 장비를 들고 생존자를 탐지하고 또 다른 팀은 수색 견을 이끌고 현장을 다니는 정도였습니다. “이거 뭐야? 이거 하려고 그렇게 기다리게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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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취파3

실망과 함께 어떻게 기사를 써야 할지 답답해졌습니다. 화려한 시범 훈련에 익숙해있던 저로서는 일단 현장의 느릿느릿한 속도감 자체가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기자들의 이해를 돕던 US&R팀원 한 사람과 한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US&R팀은 한 팀이 70명으로 구성됩니다. 수색, 구조 전문가는 물론 건물 구조 전문가, 위험물 전문가, 의료팀, 그리고 수색 견(4마리)이 한 팀을 이룬다고 합니다. 언론을 위해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훈련 장소로 택하기는 했지만 일단 구조 매뉴얼에 따라 훈련은 진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실질적으로 더 많은 생존자를 찾아낼 것이며 어떻게 구조해 낼 것인가를 점검하는 게 목적이라는 겁니다. 하루 온종일 진행될 훈련인 만큼 매뉴얼에 따라 하나 하나 해 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훈련에 방해된다면서 모든 취재팀은 노란 선 밖에서만 촬영하게 하고 오직 한 팀(미 NBC)만 풀 팀으로 들어가서 근접 촬영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원칙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이라지만 기자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이것 하나 기대하고 새벽부터 반나절을 기다렸는데 앞으로 반나절을 더 취재하라는 얘기인가? 그럴 거라면 LA 시장 연설은 뭐 하러 듣게 한 거야”

취재팀은 다른 훈련 장소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훈련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 강에서 진행되는 구조 현장을 취재하고 싶었지만 적어도 2시간은 가야 할 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지진에 따른 건물 붕괴 현장에서 생존자를 수색하고 구조하는 현장을 취재하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한 시간 거리였기에 취재하고 돌아와도 기사 쓸 시간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차를 몰고 북쪽으로 달려 산을 한 세 개쯤 넘어서 도착한 곳은 ‘LA 소방국 훈련 캠프’였습니다. 사막 같은 곳에 우뚝 솟은 산자락 위에 위치한 황량한 곳이었지만 여러 가지 재난 상황에 따른 훈련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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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취파4

현장에는 대원 40~50명쯤 있었습니다. 일부는 이미 훈련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현장에는 취재팀이 한 팀도 없었습니다. 저희가 유일한 취재팀이었습니다. 그런데 훈련장에 걸어 올라갈 때 건물을 부술 때 쓰는 각종 장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습니다. 대원 한 명이 길을 막아 섰습니다. 취재하러 왔다니까 위험하다면서 근접 촬영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30미터 거리 밖에서만 취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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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취파5

일단 훈련 현장을 그냥 지켜봤습니다. 취재팀이 있건 없건, 누가 지켜 보건 않건, US&R 대원들은 묵묵히 건물 더미를 부수고 그 안에 들어가 보고 음파 탐지기와 소형 카메라로 들여다보고 탐지 견으로 수색하는 등 그저 묵묵히 자기 할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한 대원에게 물어보니 “소 팀 별로 돌아가면서 훈련하는 겁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게 훈련의 목적이니까 한 명씩 모두 다 해 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물어봤습니다. “취재팀도 하나 없는데 굳이 이렇게 열심히 합니까?” 그 대원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어차피 취재를 위한 곳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입니다. 여기는 훈련을 하는 거고요” 참 평범한 정답이었습니다. 

훈련을 마친 대원들은 다른 한쪽 돌 더미에 앉아서 식은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고, 또 다른 대원들은 서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취재팀은 그 곳에서 대략 1시간 가량 취재를 했는데, 누구 하나 취재팀을 의식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30도가 넘는 더위에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 아래서 대원들은 그렇게 차분하게 쇼가 아닌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한국에서도 소방대원들은 박봉에도 헌신적인 자세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킵니다. 미국 소방대원들 역시 헌신적으로 자기 임무에 충실하지만, 그래도 고생한 만큼 보상을 해줍니다. 9.11 테러로 무너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US&R 팀과 소방대원들은 11명을 건물 더미 속에서 구해냈습니다. 하지만 건물이 무너지면서 34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US&R은 1989년에 창설된 이래 재난 현장마다 수많은 목숨을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재난 상황에 따라 맞춤형 훈련을 반복하면서 더 빨리 더 많은 목숨을 구하려고 구조 시스템을 점검하고 개선해가고 있습니다. 새벽 7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그리 길지 않은 취재 시간 동안 불과 두 장소에서 훈련 과정을 지켜봤을 뿐이지만, 그리고 언론을 위한 정치인들의 생색내기와 쇼맨십 가득한 영화 세트장 훈련도 있었지만 그래도 왜 자신들이 이 훈련을 하는지 분명히 알고 지켜보건 않건 묵묵히 할 일을 해 나가는 대원들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LA 시의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훈련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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