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 혼난다."
단원고 2학년 어머니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지 꼬박 한 달이 된 15일 오후 아들의 시신을 안고 팽목항을 떠났다가 다시 아들이 숨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팽목항에 서서 외쳤다.
눈물을 머금던 어머니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번졌다.
스스로 무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어머니는 "미안하다…미안하다, 아들아"를 연방 외치며 "친구들을 꼭 데려와. 난 아들을 믿는다"고 말하며 통곡했다.
어머니가 서서 아들을 애타게 부르던 그 자리는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직후 가까스로 탈출한 생존자들이 출렁거리던 구조선에서 내려 육지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었다.
아직 써늘한 날씨에 물에 흠뻑 젖은채 담요 한 장 덮고 벌벌 떨던 여학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며 배에서 내리던 남학생,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음에도 울음 한번 터트리지 않고 대견한 모습을 보이던 권지연(6)양 모두 그곳에서 내려 가족들과 다시 만났다.
육지에 도착한 첫 번째 배에서는 가장 먼저 발을 심하게 다친 선원들, 팬티 바람의 이준석 선장이 내렸다.
30여 일이 지난 이날 슬픔과 분노가 교차하는 팽목항의 그곳은 이제 가족대책회의소가 자리 잡고 있다.
텅 빈 항구는 실종자 가족을 도우려는 자원봉사 텐트로 빼곡히 가득 찼고, 취재진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실종자들이 차가운 시신이 되어 돌아올수록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어갔다.
이제는 누군가 말을 걸지 않으면 쓸쓸함마저 감도는 팽목항에서 가족들은 실종자들의 소식을 기다리며 잠수수색 상황을 실시간으로 표기하는 하얀 칠판만 바라보고 있다.
오후 1시 48분께 '잠수사 입수'라는 글씨가 적혔다.
20여 분 후 '시신 1구 수습인양'이라는 글이 잠수사 옆에 쓰이고 떨리는 마음으로 칠판을 바라보던 가족들은 저절로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단원고 실종자 어머니 한 명이 대책회의소를 나와 지인의 귀엣말을 듣더니 "진짜? 진짜?"라고 되물었다.
100여m 떨어진 임시숙소로 잰걸음을 옮기던 어머니는 사시나무 떨리듯 떨더니 급기야 휘청거리며 쓰러질 뻔했다.
아들 시신을 수습한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최근 들어 억지웃음이라도 자주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손자 실종소식에 등 뒤에 거북 등껍질 같은 짐을 들쳐메고 먼 길을 달려온 할아버지가 혹시나 걱정할까 봐 환하게 웃으며 배웅했던 어머니는 결국 아들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또다시 무너졌다.
다른 실종자 어머니는 전화기를 들고 "한 달이 다 되니 이제 올라왔나 봐"를 울먹이며 말하며 통곡했다.
100여m의 비교적 짧은 거리를 걸어오며 어머니는 수십 번 주저앉았다.
임시숙소에서 우황청심환을 들고 뛰어온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아 어머니가 들어간 텐트 안에서는 듣는 이의 가슴을 찢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족을 잃은 가족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한 달이었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마음이 무너지는 한 달이었다.
많은 것이 변한 세월호 침몰 한 달, 이곳 팽목항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슬픔과 그리움뿐이다.
(진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