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출장길에 시간을 쪼개 공연을 찾아봤습니다. '장한가(長恨歌)'라는 무용극입니다. 중국 당나라의 대시인 백거이가 쓴 서사시를 원작으로 합니다. 당 현종과 '경국지색'의 대명사 양귀비가 나눈 세기적 사랑을 내용으로 합니다.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음악과 군무·독무·2인무 등 다채로운 무용을 통해 화려함의 극치를 달렸던, 그러면서 가장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던 두 사람의 사랑을 그려냅니다.
우선 화려한 무대에 기가 질립니다. 뒷산 전체에 조명을 설치해 밤하늘과 달을 표현한 호방함에 얼이 빠집니다. 출연진의 호화찬란한 복식에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데도 눈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장대한 광경에 마음과 정신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양귀비가 당 현종과 결혼하는 장면에서 시작된 극은, 두 사람의 지극한 사랑의 기쁨, 안록산의 등장과 그의 반란으로 비롯된 두 사람의 고난, 양귀비의 자결로 인한 애끓는 이별, 죽음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사랑이 선경에서 다시 맺어지는 것으로 나아가더니, 두 사람은 끝내 새로 환생해 영원한 사랑을 얻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내용의 공연이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에서 버젓이 이뤄진다는 점도 놀라웠습니다. 당 현종의 삶은 양귀비를 만나기 이전과 이후로 극명하게 나눠집니다. 양귀비를 만나기 전만 해도 현종은 '개원의 치'로 불리는, 중국의 긴 역사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히는 선정을 한 지배자였습니다. 양귀비를 만난 이후로는 사치와 방탕을 일삼으며 간신에게 정권을 맡겼다가 나라를 망쳐버린 암군 중의 암군으로 전락합니다. 현종의 일탈은 최성기를 누리며 세계를 호령했던 당의 결정적인 쇠퇴를 가져왔습니다. 안록산과 사사명으로 이어지는 잇따른 반란으로 거의 전 국토가 전란에 휩싸였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그런 죄 많은 사랑이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지다니요!
하지만 장한가에서 표현되는 사랑은 그래서 더욱 강렬하고 절대적입니다. 나라를 던져 추구했던 사랑인 만큼 현존했던 어떤 정사보다 더 값 비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욱 치명적으로 낭만적이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백성의 고혈을 착취했던 상징물인 만리장성이나 타지마할 등이 지금에 와서 인류문화 유산이 된 것처럼 말이죠.
'장한가' 공연이 벌어지는 무대는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눴던 '화칭즈'라는 온천입니다. 아직도 온천이 올라옵니다만, 그 수량이 너무 적어 이제 온천장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상실했습니다. 지금은 욕탕의 유적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별 볼 것 없는 돌무더기는 세계적인 관광 거리가 됐습니다.
'화칭즈'에 깃든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화칭즈'는 중국 근대사를 뒤흔든 그 유명한 '시안사변'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장제스의 국민당은 만주를 점령한 뒤 중국 본토로 침략해오는 일본군을 애써 무시하고 중국 공산당 토벌에만 전력을 기울입니다. 1936년 장제스 국민당군의 실질적 2인자였던 장쉐량은 당시 '화칭즈'에 휴식을 취하러 온 장제스를 전격적으로 체포해 감금합니다. 당시 장제스가 이용했던 건물의 유리창과 벽에서 당시 장쉐량 휘하 군대가 장제스를 공격하면서 남긴 총탄 자국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안사변으로 인해 장제스는 제2차 국공합작에 나서야했습니다. 이후는 모두 알다시피 중국을 마오쩌뚱이 이끄는 공산당이 장악했고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집니다. 중국 현대사가 길을 완전히 갈아타게 된 대사건의 무대 역시 시안인 셈입니다.
'화칭즈'에서 30분쯤 가면 그 유명한 진시황의 병마용이 나옵니다. 진시황의 사후 세계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병마용은 그 엄청난 규모와 정교한 세공술로 인해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힙니다.
장안 안팎에는 이 밖에도 진시황이 만들어낸 각종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조그만 산 하나 규모인 진시황릉이 그렇습니다. 사실 병마용도 진시황릉의 부속갱에 불과합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진시황릉 안에 "수은으로 하천과 바다를 만들어 기계에 의해 쉬지 않고 흐르게 했다"고 전합니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공사를 위해 연인원 70만 명 이상이 동원됐다고 말합니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도 이런 부장품들을 손상하지 않고 발굴할 기술이 없다고 판단해 황릉에 손도 대지 않고 있습니다.
아방궁도 진시황과 관련된 대표적 이야기의 하나입니다. 이미 시안에는 아방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터에 복원 건축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시안시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 건축물을 허물고 더욱 대규모로 개발할 계획을 세웠다가 '낭비’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시안은 그 유명한 삼국지의 주요 무대이기도 합니다. 중국 4대 미인으로 일컬어지는 초선이 동탁과 여포 사이에서 이간계를 벌여 동탁의 죽음을 몰고 온 곳입니다.
손오공도 시안과 관련이 있습니다. 관련된 유적도 있습니다. 시안 시내에 있는 대안탑이 그것입니다.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을 제자 겸 호위 무사로 삼아 인도를 다녀왔다는 삼장법사, 즉 현장법사가 세운 탑입니다. 소설에서 손오공 일행이 여행을 끝마친 곳이 시안이었습니다. 또 시안에서 손오공 등은 요괴의 탈을 벗고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그래서인지 시안에는 손오공의 상과 그림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한 고조 유방이 수도를 삼은 곳도 장안, 시안입니다. 한나라는 장안에서 '문경의 치'를 거쳐 무제에 이르기까지 전성기를 누립니다. 그래서 장안에는 한나라의 자취도 적지 않습니다.
시안은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많습니다.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까지 많은 선조들이 시안을 다녀왔습니다. 당시 로마와 함께 세계 양대 도시였던 장안에서 수많은 선진 문물을 보고 배웠습니다.
의상 대사는 장안 근교에서 화엄경을 연구해 득도했습니다. '왕오천축국전'으로 유명한 혜초는 장안에서부터 탐구의 길에 나섰습니다. 최치원은 장안으로 유학을 온 뒤 당나라 과거에 급제해 중국 전역에 문명을 떨쳤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일제시대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이 시안에 총사령부를 설치한 바 있습니다. 이후 광복군 주력부대인 2지대가 시안 근교에 주둔하며 항일 무력 투쟁에 나섰습니다. 최근 시안시가 그 유적지에 기념비와 기념 공원을 조성해 개방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시안이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국 내 항공 우주 산업과 함께 IT 산업의 메카로 육성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삼성전자는 시안에 7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얼마 전 생산에 들어갔습니다. 삼성전자의 협력 업체 60곳도 시안에 동반 진출했습니다.
2천년 넘는 세월 동안 각종 이야기를 새겨 넣은 시안이 이제 최첨단의 새로운 이야기, 역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주인공의 하나가 우리 기업들입니다. 시안이 만들어갈 새로운 이야기에 그래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