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혁명으로 공산 정권을 무너뜨린 동유럽 8개국이 5월1일로 유럽연합(EU) 가입 10주년을 맞는다.
경제 공동체로 출발한 EU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하던 냉전시대에 군사 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손잡고 서방을 하나로 결속하는 역할을 했다.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동유럽 국가에 잇따라 손을 내밀며 외연을 확장한 EU는 당시 자격이 다소 모자라더라도 미래를 겨냥해 이들 나라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경제 효과는 '분명'
헝가리와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등 옛 공산권 출신의 8개국은 EU의 외연 확장 정책에 힘입어 2004년 5월에 EU 가입을 완료했다.
1952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 등 6개국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싹을 틔워 5차례나 회원 확장에 나선 EU에 이들 8개국과 몰타와 키프로스 등 10개국이 한꺼번에 합류했다.
특히 중·동구 다수국을 포용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로 동서로 분단됐던 유럽이 '철의 장막'을 녹이고 단일체로 거듭나기 위한 궤도에 올라탄 것으로 당시 언론은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의 '아메리카합중국'에 견주는 '유럽연합 합중국'의 꿈을 유럽인에게 심어주는 단초가 됐다 .
EU 가입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미가입했을 때의 변화를 계량화해 측정하기 곤란하다.
폴란드는 EU에 가입하고 나서 2년간 젊은이들이 서유럽 국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바람에 당시 전체 노동력의 5% 규모인 110만명의 인구 유출로 경제가 위축하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반면 독일은 저임금 노동자 50만명이 몰려 들어와 제조업의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었다.
초기의 '빅뱅'이 진정되면서 동유럽 국가의 사회 전반이 'EU 기준'에 따라 상향 평준화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일례로 옛 유고연방에 속했던 크로아티아는 2004년 EU 가입 협상을 시작, 근 10년 만인 2013년 7월 EU의 27번째 회원국이 됐다.
가입 협상 중에 자격을 갖춰갔지만, 막상 가입 당시에 낙농제품의 위생 수준을 'EU 기준'에 맞춰 높이느라 낙농업체들은 홍역을 겪었다.
경제적 효과는 당장 드러나지 않고 측정하기 어렵다.
비교적 빈곤한 동유럽 국가의 EU 가입 직후 EU의 1인당 GDP는 오히려 떨어지기도 했다.
또 동유럽의 값싼 노동력 유입을 우려한 서구 부국들의 반발로 서비스 시장 개방도 미진했다.
그러나 EU 가입전 자동차 생산 기반이 없다시피한 슬로바키아는 가입 10년 만에 1인당 유럽 최대 자동차 생산 국가가 됐다.
슬로바키아는 임금이 저렴해 한국의 기아 자동차를 비롯해 독일 폴크스바겐, 프랑스의 푸조-시트로앵 등이 생산공장을 가동 중이다.
작년말을 기준으로 모두 1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해 유럽 국가 중 인구당 차량 생산 대수가 가장 많다.
제조업체들이 앞다퉈 동유럽에 진출한 덕분에 헝가리에는 독일의 벤츠, 폴크스바겐, BMW 등 자동차 업체들이 공장을 설립, 자동차 산업이 헝가리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 등 생산 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이 역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EU는 대외무역에서 단일 시장의 강점을 내세워 강력한 공동 전선을 형성해 미국과 중국, 인도 등 신흥 부상국에 대해 섬유 수입량을 규제하는 등 효과적으로 맞서고 있다.
◇정치발전 갈 길 멀어
EU가 애초 경제 공동체에서 출발했고, 경제 협력을 바탕으로 발전한 만큼 아직도 '공동 정치' 수준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한 상태다.
특히 공산주의로 50년 넘게 '철의 장막'에 갇혔던 탓에 민주적 경험과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정치 평론가와 학자들은 지적한다.
또 회원국 내부 정치인 만큼 EU가 무작정 개입할 수 없다는 한계도 애초 내포하고 있다.
헝가리의 경우 지난해 헌법을 소급 개정한 것을 두고 EU 집행위원회가 여러 차례 경고만 했을 뿐 제재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다만, 특정국의 정책이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인도주의에 어긋난 행동인지를 가려내 사법재판소와 인권위원회 등을 통해 제재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의 추방이나 가족관계법, 망명신청 등에서는 국적 부문과 성차별 또는 인종 차별 등 기본 인권과 관련한 부문은 모든 회원국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런 제도적 장치 덕분에 헝가리의 경우 지난해 법관의 정년을 70세로 연장한 데 반발한 법관들이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었다.
비록 패소했지만 EU 가입으로 보편적 유럽 기준이 회원국에 적용된 사례로 들 수 있다.
EU의 정책 중 가장 효과를 내는 부문으로 전문가들은 외교 정책을 꼽고 있다.
EU 헌법이라 할 리스본 협약에 따라 회원국은 EU 공동 외교 정책을 추진하고, 만장일치로 동의한 결정을 준수한다.
이런 모습은 최근 우크라이나에 무력 개입한 러시아에 대해 EU가 3차례에 걸쳐 제재 조치를 취하고 회원국이 일사불란하게 제재를 준수하는 데서 명확히 알 수 있다.
EU 가입 10주년의 성과와 발전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슬로바키아의 미출라스 쥬린다 전 외무장관은 최근 열린 한 세미나에서 슬로바키아의 EU 가입을 두고 "EU는 에덴동산이 아니었고,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다"고 회고하며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좋은 곳임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가 지배적인 만큼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등 상당수 발칸 반도국가들은 국운을 걸고 EU 가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