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기 하루 전인 지난 월요일,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빌딩에 백악관의 외교안보 실무 참모들이 총출동했다. 외신에 순방 배경을 설명하는 회견 자리다.
벤 로즈 국가안보회의 (NSC) 부보좌관과 에번 메데이로스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연단에 섰다.
옆자리에는 국무부 부대변인을 지내다 존 케리 장관 취임 이후 NSC로 자리를 옮긴 패트릭 벤트렐, 여성 참모인 케이틀린 헤이든 대변인이 배석했다. 북한이 핵 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같은 대형 도발을 할 경우 백악관의 반응은 대체로 이들의 손과 입을 거쳐 나온다.
벤 로즈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커뮤니케이션 담당 보좌관인데 달변이다. 주요 외교 안보 현안에 막힘이 없다. 카메라 앞에도 자주 선다. 반면, 중국 통 학자 출신의 메데이로스 박사는 보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림자 참모다. 핵심 실무진들이 모두 나선 건 백악관으로서는 꽤 성의를 보인 셈이다.
시그널 - “신호를 찾고 있다“
벤 로즈는 순방 1호 어젠다로 미일 동맹 현대화와 한미일 3각 안보협력 강화를 꺼냈다. (이 문제는 따로 살펴보겠지만 미국은 아시아에서 한-미 동맹, 미-일 동맹 등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전거 바퀴 틀 같은 '허브-앤-스포크' 구조의 분절적 관계에 한계를 느끼는 듯하다.)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에 오바마 대통령이 애도의 뜻을 표현할 기회를 찾고 싶어 할 것이라고 전했다.
역시 빠지지 않은 것은 북한이다. 오바마가 북한에는 가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의 방한에 때맞춰 북한이 4차 핵실험에 나설지 모른다는 설익은 관측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백악관 참모들로서는 뜨끔뜨끔할 것이었다.
로즈와 메데로이스의 답변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사인(sign)’과 ‘시그널(signal)’ - ‘신호’라는 표현이었다.
"북한이 협상에 진지하다는 어떤 신호를 볼 필요가 있다." (벤 로즈)
"그들이 실제로 비핵화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어떤 신호를 찾고 있다" (에반 메데이로스)
물론 최근의 새로운 핵실험 위협 같은 것을 보면 북한은 신뢰성 있는 진짜 협상에 관심이 있다고 여길 만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대북 정책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노!’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백악관과 국무부 대변인이 되풀이하던 꽉 막힌 '모범 답변'과는 느낌이 달랐다. 적어도 오바마 대통령 순방 중에 도발하지 말고 비핵화의 신호를 보이라고 북한에 보내는 미 행정부의 '신호'로 들렸다.
'큰 것 한방' - 핵실험 신호?
서울에서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결정적 신호를 포착한 분위기였다. 군은 '핵실험 대비 위기관리 태스크 포스' 가동에 들어갔다. 서울발 보도를 보면, 국방부 대변인은 '큰 것 한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북한 내부의 첩보를 공개했다고 한다. 물론, 기만전술일 수 있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핵실험 강행 쪽이 훨씬 무게가 컸다.
첩보 사항을 공개한 국방부 대변인의 가벼운 입에 대해서는 그 처신과 의도를 둘러싸고 군사 전문가들과 언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펜타곤, 미 국방부의 존 커비 대변인은 "핵실험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는 관련 보도를 봤다. 발표하거나 확인할 것은 없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백악관과 국무부 대변인들도 마찬가지다. '관련 보도를 봤다,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은 도발하지 말고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지키라’는 한결같은 답변이다. 핵실험 동향과 관련한 일체의 첩보 사항은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 '38노스'가 공개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위성사진 (디지털 글로브 4월 19일 촬영) ]
같은 날 워싱턴의 북한 분석 사이트인 '38노스'는 4월 19일 촬영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의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상업 위성인 디지털 글로브가 촬영한 것으로 간헐적으로 찍는 사진이라는 한계를 전제로 조심스럽게 분석 결과를 내놨다. 최근 나무 상자가 보이고 대형 트럭이 포착되는 등 활동이 증가했다면서도 핵실험 계측에 필요한 통신, 위성 장비 같은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활동의 강도가 과거 핵실험 직전의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해 핵실험을 하려 한다면 준비 초기 단계이거나 아니면 겨울을 지내고 단순히 유지 보수를 하는 차원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38노스는 이어 나흘 뒤인 23일 촬영한 위성사진을 25일 추가로 공개했다. 차량과 자재의 이동이 증가했고 지휘 통제 차량으로 추정되는 차량도 포착됐다며 아마도 폭발(detonation) 준비와 연관된 추가 활동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헷갈리는 신호다.
우리 국방부는 해상도가 떨어지는 상업 위성으로 뭘 알 수 있겠느냐며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정부는 평양의 정치적 결정만 있으면 언제든 기술적으로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이와 달리 북핵 문제에 정통한 뉴욕타임스의 David Sanger기자는 "대비는 해야겠지만 필수적인 준비 중 일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익명의 한국 고위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 "We have to be prepared, but some of the necessary preparations simply aren't visible yet," a senior South Korean official said Tuesday evening...”
믹스트 시그널 (mixed signal)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에 발을 디디자 북한이 다각도로 신호를 발신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조선적십자사를 통해 위로 전통문을 보내 왔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택일도 저울질을 한 듯하다. 또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묻는 '공개 질문장'을 조평통 명의로 발표했다. 북한의 의중을 대변해 온 일본의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핵실험설은 남한 당국이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이목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위기수습책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기술적으로 4차 핵실험을 필요로 하는 북한이 중국의 반발 등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이를 강행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과 남북 관계 파탄을 초래할 것이며, 따라서 추가 도발을 막는 한편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데 이론을 달 국민은 없을 것이다.
신호가 복잡하다면 해석은 더욱 정교해야 한다. 알 권리를 존중한다면 전체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 혼재된 신호 가운데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한다면 혼선만 초래할 뿐이다. 세월호 침몰로 비탄에 빠진 국민들에게 불안감만 안길 뿐이다. 오늘 서울에 발을 디디는 오바마 대통령은 평양을 향해, 또 한반도를 향해 어떤 시그널을 보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