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통정책이 지향하는 가장 큰 핵심가치에는 바로 '보행자'가 있습니다. 정책을 수립할 때 '시민 안심'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두는 박원순 시장은 교통 정책에서도 '시민의 보행권'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이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교통 정책을 실시하는 것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교통 정책에서 운전자보다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히 지향해야 할 방향입니다. 때문에 저는 보행자 중심으로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서울시 교통 정책의 큰 방향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좋은 가치를 실현하려면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교하고 세심한 행정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연세대 정문 앞에서 신촌역까지 550m인 연세로는 올해 1월 서울에선 최초로 대중교통 전용지구로 지정됐습니다. 기존 4차선이던 차도를 대폭 줄이고 인도를 크게 넓혀 보행자가 안심하고 거닐 수 있는 거리를 목표로 혁신적인 실험을 시작한 겁니다.
다른 곳도 아닌 연세로를 서울 최초의 대중교통지구로 만들겠다는 서울시 계획을 듣고 저는 기대가 컸습니다. 연세로는 신촌 전철역에서 연세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만큼 보행자 가운데 대학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거리였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20대 발랄한 대학생들은 새로운 교통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또 서울시는 이런 거리의 특성에 맞춰서 어떤 마스터 플랜을 준비했을까 사뭇 기대됐습니다.
연세로가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변신한 지 두 달째, 안타깝게도 연세로는 그야말로 비정상이 정상인 '무법천지의 길'이 됐습니다. 일단 요즘 연세로를 가보면 두 번 놀랍니다. 처음 놀라게 되는 광경은 양 방향 2개 차선인 차도를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겁니다.
하도 많은 이들이 스스럼없이 무단횡단을 하니 '대중교통전용지구는 무단횡단을 허용하는 곳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돕니다. 또, 한번 놀라게 되는 광경은 무단 횡단을 해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무단횡단이 일상적인 상황으로 정착되고 있는 겁니다.엄연히 버스가 다니는 도로에서 무단횡단은 그 자체로도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무단횡단'이란 위법상황이 사람들에게 '일상화'된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요? 일단 연세로는 차도 폭이 너무 좁아졌습니다. 거기에 버스를 제외하곤 다른 차량은 진입금지입니다. 차도는 크게 좁아지고 교통량은 절대적으로 줄어드니 도로는 텅 빈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보행자들은 무단 횡단의 유혹을 느끼기 딱 좋은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무단횡단을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서울시는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나 연세로에는 그런 고민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낮과 밤 모두, 진입이 금지된 승용차와 택시 오토바이들이 쉴새 없이 들어옵니다.
여기에 보행자를 위해 차도와 인도의 턱마저 없애서 차량이 인도로 진입하면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도 불법 진입차량이 많아 위험해 보여서 SBS 취재진은 야간에 불법진입차량이 얼마인지 직접 촬영해봤습니다. 2시간 동안 오토바이와 승용차만 각각 80대, 택시까지 합치면 무려 174대나 됐습니다. 밤에는 그나마 계도 인력조차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서울시는 특단의 대책 마련은 커녕 "나름대로 계도 활동을 하고 있고, 불법 진입 차량은 줄어드는 추세"라는 한가한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무단횡단'을 해도 '불법진입'을 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는, 비정상이 정상이 된 연세로! 새로운 교통 환경 시도는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냥 시도만 한 채, 후속 관리가 안되는 상황은 안 하니만 못합니다.
연세로에서 정말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교통무법천지' 연세로가, '보행자 안심거리'로 거듭날수 있는 방안이 하루 빨리 모색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