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만나기 위해 대전행 기차에 올라탄 7살, 5살 남매는 잠깐 잠든 사이 목적지를 지나쳐 부산역에 내렸습니다.
남매는 부산역에서 집에 데려다 주겠다는 낯선 남자의 손에 이끌려 트럭에 올랐습니다.
트럭의 짐칸에는 이미 중학생부터 20대 젊은이까지 한 무리의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납치되다시피 트럭에 태워진 사람들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수용소 같은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수용자들에게는 각각 번호가 붙여졌고, 머리를 짧게 깎인 채 아동소대와 여성소대, 성인소대로 분류됐습니다.
수용자들은 모두 똑같은 파란색 운동복을 입고 소대장과 중대장의 감시 아래 매일 강도 높은 제식훈련과 강제노역을 이어갔습니다.
수용자들이 '지옥'이라고 증언하는 그곳은 70, 80년대 전국 최대 규모의 사회복지기관이던 '형제복지원'입니다.
1975년, 부산시와 부랑인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은 형제복지원은 국가보조금을 지원받으며 3천여 명의 부랑인을 수용했습니다.
그러다 1987년, 한 검사가 우연히 산 중턱의 작업장에 감금된 수용자들을 목격하면서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복지원이 운영된 12년 동안 모두 513명이 숨진 사실이 밝혀졌고, 수십억 원에 달하는 외화가 복지원 내부에서 발견됐습니다.
검찰 수사 한 달 만에 복지원 원장 박모 씨가 특수감금과 업무상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됐지만, 조사 내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박씨는 7번의 재판 끝에 일부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6월을 선고받는데 그쳤습니다.
1987년, 형제복지원이 폐쇄된 이후 원장 박씨 일가는 '형제복지지원재단'으로 법인명을 바꾸고 계속 시설을 운영해왔습니다.
2005년에는 재단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118억 원을 불법대출 받은 사실이 부산시 감사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지난해에는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출범했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명백한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추진됐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지원이 사망자 513명의 시신을 병원에 팔았다거나 뒷산에 암매장했다는 소문이 떠도는 등 진실이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복지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주 방송되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27년 전 끝내 밝혀지지 않았던 형제복지원의 진실을 파헤치며 원장 박씨가 '복지재벌'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을 추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