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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16억대 농업보조금 사기…농기원 묵인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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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러난 제주도농업기술원 공무원의 국고 보조금 사기 사건과 관련해 당국이 구속된 직원의 사기행각을 알면서도 묵인, 농민들의 피해만 키웠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제주동부경찰서는 관련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자 추가 수사해 농업기술원 측에 대해 직무유기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 사기행각 알면서도 '묵인' 의혹 도 농업기술원 소속 공무원 허모(40·구속)씨가 시설하우스 국고 보조금을 받게 해주겠다며 속여 피해를 본 농민과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해당 기관이 직원의 비위를 미리 알았음을 뒷받침하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녹취록에는 사기 피해를 본 한 농민이 국고 보조에 따라 미리 낸 자부담금이 통장에서 몰래 빠져나가는 점을 수상히 여겨 해당 금융기관에 확인하고, 금융기관 직원이 관련 사실을 농업기술원에 통보한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농민들의 요청으로 2개월 가까이 허씨의 보조금 관련 계좌를 눈여겨봤던 금융기관 직원 A씨는 "통상 보조금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사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인출하지 않지만 농민들이 자부담금을 입금하자마자 바로 돈이 빠져나가 이상하게 생각하게 됐고 결국 보조금 사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내용이 녹음돼 있다.

A씨는 지난해 12월께 이런 사실을 알게 되자 농업기술원을 찾아가 알렸지만 농기원 측은 "자기네가 알아서 해결하고 그쪽 집안이 탄탄하니까 부모님한테도 이야기하는 등 책임질 테니 기다려 달라고. 걱정 말라고 했다"고 녹취록을 통해 전하고 있다.

녹취록을 공개한 피해 농민 B씨는 "농업기술원이 소속 공무원의 비리를 지난해 12월에 알고 있었음에도 사전에 직원을 징계하는 등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아 이후에도 피해를 본 농민이 더욱 불어났다"고 분개하고 있다.

그는 농업기술원에 관련 사실을 따졌으나 "개인이 저지른 비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상관없다. 개인이 안 물면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경찰에 따르면 농업기술원이 허씨의 사기행각을 인지한 지난해 12월 시점부터 올해 2월까지 피해를 본 농민은 19∼20명으로 전체 피해농민의 절반 가까이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농업기술원이 당시 허씨를 곧바로 징계하는 등 제대로 된 조치만 취했어도 이들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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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기술원은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후인 3월 3일에야 제주도 청렴감찰단에 허씨의 비위사실을 '동향보고'라는 문서 형식을 통보했다.

기술원 측은 "12월께 관련 사실을 인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조사할 때만 하더라도 피해를 본 허씨와 가까운 농민들이 피해 사실을 숨겨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다"며 "올해 2월 중순께 또 다른 제보가 들어와 조사를 벌였고 비위 사실이 정확하게 드러나 청렴감찰단에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허씨에 대한 경찰수사가 시작된 이틀 후인 지난 7일에야 감사위원회에 회부했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녹취록을 확보했다"며 "관계자들을 불러 농업기술원의 '직무유기' 부분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피해 농민들과 업체들은 최근 '시설하우스 사기 피해대책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제주도와 허씨 등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는 등 피해보상 요구 방안을 본격 논의하고 있다.

◇ 파멸 부른 '돌려막기' 사기행각 사기행각을 벌인 허씨는 지난해 2월께 알고 지내던 서귀포시 표선면 K(57)씨에게 접근, 보조금사업 자체가 없음에도 20∼30% 자기부담금만 선납하면 '시설하우스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속여 4천550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그는 올해 2월까지 감귤 및 한라봉 등을 재배하는 농민 23명으로부터 이런 방식으로 12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 13일 구속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허씨에게 피해를 본 농민들이 속속 밝혀지며 피해 농민은 44명, 피해액은 16억5천여만원으로 불어난 상태다.

농민들에게 시설하우스를 지어 준 업체들도 공사비를 받지 못해 2차 피해로 이어져 그 여파가 크게 번지고 있다.

경찰은 허씨가 지난해 농촌진흥청에서 시행한 '은나노와 난황유의 혼용처리에 의한 박과 채소의 병해방제'라는 연구 과제를 농가와 공동으로 추진하면서 사업비 3천만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업무상 횡령)를 추가 포착하기도 했다.

허씨는 사기행각을 벌일 당시 보조금 지원사업이 실제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사업자로 선정됐다'는 내용의 위조 공문서를 제시하며 피해 농민들을 속인 것으로 밝혀졌다.

허씨는 피해 농민들로부터 1천800만∼6천800만원의 자기부담금이 들어 있는 통장과 비밀번호를 건네받은 뒤 배우자 등 타인의 계좌로 이체해 돈을 가로챘다고 경찰은 밝혔다.

그러나 1년 넘게 사기를 치는 동안 수상히 여긴 피해자들과 금융기관 직원이 허씨에게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압박에 허씨는 처음에는 자신의 돈을 털어 갚아나갔고 곧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또다시 같은 방법으로 다른 농민들에게 사기행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농민에게 사기를 쳐 이전에 사기를 친 농민에게 갚아나가는 등 속칭 '돌려막기'를 했던 것이다.

경찰은 허씨가 인터넷 도박 때문에 개인채무에 시달리다 범행을 저질렀으나 또 돌려막기를 하는 과정에서 다시 도박에 손을 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허씨가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에 접속, 1천932차례에 걸쳐 인터넷 도박을 했으며 피해자들로부터 가로챈 돈 16억여원 중 11억여원을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구속된 공무원 허씨는 21일 상습사기, 공문서 위조, 위조공문서 행사, 업무상 횡령,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등 5개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제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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