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지점을 거느린 시중은행에서 절도범이 훔친 신분증으로 대포통장을 만들어 대출받는 데 이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은행 지점이 진상파악에 나섰습니다.
은행 측에 따르면 창구 여직원의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속았다는 설명입니다.
어제(20일) 경찰은 93차례에 걸쳐 훔친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이용, 1억여원을 대출받아 가로챈 40대를 붙잡았습니다.
이모(46)씨는 지난달 10일 오후 1시 광주 동구의 한 병원 의사 당직실에서 의사 A(28)씨의 신분증을 훔쳐 나왔습니다.
다음날인 오후 1시 광주 한 은행지점에 훔친 신분증을 들고 간 이씨는 당당하게 직원에게 공과금 자동이체할 계좌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면서 훔친 신분증을 여직원에게 건넸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 인물의 모습은 이씨보다 어리고 통통한 외모였습니다.
신분증을 받아본 은행 여직원은 '사진이 실물과 다르다. 신분증이 맞느냐'고 질문했다고 해당 은행 측은 전했습니다.
그러자 이씨는 예전 어린 시절 사진이라고 둘러댔습니다.
여직원은 아무리 봐도 달라 보이기에 주변 직원에게까지 사진을 보여주며 같은 사람인지 물었습니다.
결국 여직원은 잘 작동하던 컴퓨터를 강제로 꺼 먹통이 된 척하며 시간을 벌어 위조 신분증 검사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은행 측은 설명했습니다.
또 해당 신분증 상의 인물인 의사 A씨가 해당 은행과 거래한 고객정보(CRM)를 조회해 직업이 무엇인지, 왜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 이곳까지 왔는지 자연스럽게 물었습니다.
이씨는 "직업이 의사다. 이 주변에 산다"고 말하며 한술 더 떠 요즘 의사 인턴하느라 스트레스받아서 살이 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바빠 죽겠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당황한 여직원은 위조 신분증도 아니고 이씨가 훔친 신분증으로는 알 수 없는 직업과 직장을 세세히 알고 있어 찝찝한 마음에도 계좌를 개설하고 인터넷뱅킹까지 신청해줬습니다.
대포통장 개설에 성공한 이씨는 대포폰까지 만들어 개인인증을 받아 공인인증서를 확보했습니다.
신분증, 대포통장, 대포폰, 공인인증서로 대출업체에 대출 신청을 해 1천만원을 받아 가로챘습니다.
같은 수법으로 모두 3차례에 걸쳐 4천300만원을 가로챈 이씨는 3번 훔친 신분증으로 대포통장을 만들면서 모두 한 계열 시중은행을 이용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해당 은행의 본인확인 절차가 유독 허술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은행의 지역지점 관계자는 "통장 하나 개설하는 데 20~30분이나 시간을 끈 것으로 봐 당시에는 최대한 노력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은행이 전국적으로 많은 지점을 운영하다 보니 우연히 우리 은행만 범죄에 악용된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일선 은행들이 도난 신분증으로 대포통장을 개설하는 범죄에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절도범이 이용한 은행도 신분증 외에 개인확인 절차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보완적인 확인 절차도 주먹구구식이었음을 드러냈스빈다.
다른 은행도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아 명의도용 피해를 막기 위한 금융당국의 본인확인 절차 보완이 절실합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