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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화염병 시위 중화상 입은 여중생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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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테두리 안에서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는 분들이 극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정부가 일찍 눈을 돌렸으면 좋겠어요."

25년 전 등교 중 시위 현장을 지나가다가 날아온 화염병에 중화상을 당한 여중생이 공무원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있어 훈훈함을 주고 있습니다.

광주 북구청 교환실에서 근무하는 도미선(39)씨.

도씨는 중학교 3학년이던 1989년 11월 광주 북구 중흥동 옛 민정당사 앞 정류장에서 등굣길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도씨는 "사람이 평소보다 적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데모하는 소리가 들렸다"며 "사람들 말로는 벽에 화염병이 부딪치면서 액체가 나에게 흘러 불에 탔다고 하더라"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중화상을 입은 도씨는 처음 한 달 동안 진통 주사를 하루에 7대씩 맞아야 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고 침상에 누워서 손조차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문제를 듣고 입으로 대답하며 고입 시험을 치렀지만 결국 수십 차례의 수술 탓에 휴학을 해야 했습니다.

국가에 보상을 요구하려던 도씨의 아버지는 "국가 상대 소송에서는 승소 가능성이 낮으니 가해 학생을 찾아 소송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변호사들의 권유에 소송도 포기했습니다.

아버지는 "가해학생을 찾는다 한들 자식 같은 젊은 아이 인생을 망치게 될 테니 용서하자"며 딸을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도씨는 사과하러 온 대학 총학생회 학생들에게 '언니·동생'이라 부르며 용서의 뜻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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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경은 계속됐습니다.

도씨는 얼굴의 상처로 사범대 면접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교사의 꿈을 접고 사학을 전공했습니다.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여의고 집마저 남에게 넘어가 더는 병원에 가기도 어려운 형편에 놓였습니다.

도씨는 날품을 팔아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를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휴학 때문에 중학교 동기들이 졸업반 선배가 돼 있었던 대학에서 그는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목표를 이루려고 학업에 열중하며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용모 단정'이라는 조건에 가로막혀 그 흔한 음식점 아르바이트도 못했고 전자공장 면접에서는 손에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탈락하기도 했습니다.

컴퓨터활용능력·워드프로세서·사무자동화 산업기사·정보처리기사 등 갖가지 자격증도 입사시험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도씨는 2002년 광주 북구청에 일용직 공무원으로 채용돼 지난해 정규직(무기계약직) 신분으로 전환됐습니다.

도씨는 "사고로 많은 보상을 받은 줄 아는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딸 때문에 부자 됐겠다'는 말을 할 때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도움의 손길이 있었지만 막대한 치료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내 꿈은 물론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해 한 사람의 당당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려서는 살기 위해 싸웠고 18살부터는 남들이 평범하게 하는 일들을 하려고 최소한 배 이상 노력하며 살아야 했다는 도씨는 "나 역시 주변의 도움과 관심이 없었다면 지치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최근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한 가족들의 보도를 많이 접했는데 그 착잡한 심정이 이해가 돼 안타까웠다"며 "단순히 예산 운운하기보다는 범죄 피해자나 소외계층 등 법과 사회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취업기회 등 자립을 위한 현실적인 지원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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