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겸 프로듀서인 양방언(54)은 26일 "소치에서 오늘 오전 7시30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며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다.
지난 24일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의 올림픽기 이양식 무대에서 차기 개최지 평창을 알리는 공연의 음악 감독을 맡은 뒤 귀국한 길이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의 공식 주제가 '프런티어'를 만드는 등 국가적인 행사에 참여한 게 처음이 아닌데도 또렷한 기억을 갖고 돌아온 듯 했다.
"지난 19일 출발해 20일 새벽 5시30분에 도착하자마자 리허설에만 매달렸어요. 현지에 호텔이 모자라 정박해 있는 크루즈에서 묶어서 조금 힘들었지만 정말 제 음악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이 무대에서 아리랑, 구아리랑, 강원도아리랑을 엮어 8분짜리 대곡으로 재해석한 '아리랑 판타지'를 선보였다. 성악가 조수미, 재즈 가수 나윤선, 가수 이승철이 장르를 대표하는 보컬로 참여했으며 그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
종로구 수송동에서 인터뷰한 양방언은 벅찬 감동이 새록한 듯 했다.
"무대에 올랐는데 '진짜 잘해야겠다'는 힘이 쏟아져나오더군요. 소치 폐막식이 워낙 웅장해서 우린 작은 인원으로 고유의 멋과 매력을 선보여야 했어요. '아리랑'은 그런 점에서 무척 훌륭한 소재였죠. 한국인 모두가 공유하는 아리랑을 몇 달간 소중히 만들어 세계에 선보이는 자리여서 뜻깊었습니다."
양방언이 '아리랑 판타지'란 제목으로 아리랑을 재해석한 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아리랑을 교향곡으로 선보였고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웅장한 스케일로 들려줬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를 계기로 아리랑에 관심을 갖고 눈을 뜨게 됐다고 했다.
"아리랑은 우리의 혼이 담긴 블루스에요. 무척 매력적인 건 지역마다 구전된 다양한 아리랑이 있고 음악적으로도 해석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이죠. 굉장히 익숙한 멜로디지만 아직 100% 이 노래를 해석하고 표현해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의 노래이니 더 알고 싶고 더 찾고 싶어요. 그래서 판타지란 단어를 붙였죠."
이번 '아리랑 판타지'는 '윈터 소치 버전'이다.
그는 이 곡에 대해 "음악 작품에는 온도감이 있다"며 "우리가 라틴, 레게 음악을 들으면 여름을 떠올리듯이 피겨 스케이팅 등 동계 스포츠의 역동성과 스피드있는 움직임을 떠올려 그런 이미지를 가미했다"고 설명했다.
클래식, 록, 월드뮤직, 재즈 등의 장르를 아우르며 활동한 크로스오버 뮤지션답게 조수미가 구아리랑을 클래식, 나윤선이 강원도아리랑을 재즈, 이승철이 아리랑을 팝 스타일로 노래하도록 완성했다.
"국제적인 무대이니 장르를 다양하게 선보이되 되려 판소리 등 전통적인 부분을 빼 보자고 했죠. 고유의 음악을 세계인이 접하기 쉬운 장르로 접근성을 높인 거죠."
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함께 오는 27일 공개하는 '마음을 이어주는 세계인의 노래, 아리랑 4집'(ARIRANG, The Name of Korean vol.4)에도 참여했다.
그는 "이 음반에서는 아리랑을 아쟁, 25현 가야금, 소금, 장구 등 실내악 편성으로 편곡했다"고 설명했다.
'아리랑 박사'가 되는 것 아니냐고 하자 "이번에도 국립국악원 등 여러 곳에서 아리랑 자료를 많이 줬는데 난 아리랑 전문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일 뿐"이라며 "많은 예술가가 시도한 아리랑을 새로운 시각과 나의 색깔로 계속 추구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양방언은 이날 하루 서울에 머문 뒤 제주로 떠난다. 재일동포 의사 출신인 그에게 제주는 아버지의 고향이어서 남다른 곳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이곳을 찾아 돌문화공원에서 '양방언의 제주 판타지'란 제목으로 공연했다.
"앞으로도 제주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요. '제주 판타지'도 처음엔 공연 제의만 왔는데 음악뿐만 아니라 제주만의 독특한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무대로 꾸몄죠. 제주 문화를 좀 더 재발견하고 알리기 위해 페스티벌 등 다른 형식으로 선보일 논의를 할 계획입니다."
그는 국립극장의 퓨전국악 축제 '여우樂(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도 3년째 맡고 있다.
"음악가의 역할은 메시지 전달입니다. 전달하는 방법은 연주, 작곡도 있지만 페스티벌 전체를 프로듀싱하거나 예술 감독을 맡아 다른 표현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음악에 대한 열린 자세 덕에 그는 영상 음악 작업도 숱하게 했다. 일본 NHK 애니메이션 '십이국기', 니혼TV 애니메이션 '엠마',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엔씨소프트 온라인 게임 '아이온(AION)' 등의 OST 작업을 했다.
"좋은 작품과 만남이 있다면 도전한다는 점에서 전 일관성이 있습니다. 창극의 음악 감독은 해봤지만 아직 뮤지컬 음악은 못했네요. 윤호진 감독의 뮤지컬 '몽유도원도'의 음악 감독을 맡았는데 작품 진행이 좀 더디지만 열의를 갖고 시도해볼 겁니다."
오는 28일 일본으로 돌아가면 내년 초 개봉할 일본 대형 영화 OST 작업을 마무리하고 연내 발표할 새 앨범을 준비한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한국을 방문하지만 그의 집은 나가노현 가루이자와 산속에 있다. 집에 작업실이 함께 있어 이곳에서 주로 음악 작업을 한다. 나가노가 199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였으니 스키 등 동계 스포츠도 즐기는지 물었다.
"10년간 스키는 세 번 타봤네요. 오히려 도쿄에 살았을 때는 스키, 골프를 좀 즐겼는데…. 수년째 그럴 여유가 없네요. 하하."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