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려다 결국 자신이 명예 당수로 있는 집권당조차 자신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자 일부 측근들과 함께 도주한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 임시 정부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에 대해 수배령을 내리고 그가 숨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크림 반도로 수사대를 급파했습니다. 시위대 진압을 위해 특수부대를 동원했고, 발포 명령까지 내렸다는 겁니다. 하루 동안에 거의 100명 정도가 숨졌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기시감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겠군요.
지난주 우크라이나 사태가 유혈로 치달을 때 언뜻 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 드디어 야누코비치의 명령에 따라 투입된 군부대가 저격 소총으로 시위대를 ‘사살’하는 장면이 공개됐습니다. 지난번에 시위대 쪽에서 촬영한 영상과는 달리 군부대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저격 소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화면에 나타난 저격 소총은 구소련이 개발해 동구권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Dragunov (드라구노프) 저격 소총인데, 보통 SVD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길이는 1미터 20센티미터가 넘습니다. 총열만 61센티미터나 됩니다. 우리 군이 기본으로 사용하는 K2 소총이 전체 길이 97cm, 총열 46.5cm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큽니다. 7.62mm 총탄을 사용하는데 사거리는 유효사거리 800m에 최대사거리는 1.3km나 됩니다. (참고로 우리 육군의 제식 소총인 K2의 경우는 5.56mm 총탄을 사용하고, 사거리도 조금 짧습니다.) AK-47 같은 베스트 셀러는 아니지만 동구권은 물론 테러리스트들까지 애용하는 저격 소총입니다.
우리 군도 이런 저격 소총을 보유하고 있는데 모두 수입품입니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도 똑같이 7.62mm 탄을 사용하고 유효 사거리 800m인 저격 소총을 개발해서 지난 연말부터 보급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제식명은 K-14로 명명됐다고 하는군요. 저격 소총에도 몇 단계가 있는데 이게 소대나 분대급의 일선 보병 부대에 보급되는 가장 기본적인 저격 소총입니다.
자료를 보면 1차 대전 때는 적군 1명을 사살하는 데 실탄을 평균 7천 발, 2차 대전에서는 2만5천 발을 쏘았다고 합니다. 베트남전에서는 평균 2만5천 발에서 5만 발을 쏘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격수는 적군 1명을 사살하는데 평균 1.3에서 1.7발 정도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실제 전투에서 저격수의 위력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때문에 어느 나라나 능력이 뛰어난 저격수 훈련과 함께 성능이 좋은 저격 소총을 개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저격수를 자국 민간인인 시위대를 상대하는 데 투입했다는 겁니다. 비록 시위대 쪽에서도 총을 쏘았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주장했지만 이렇게 저격수를 동원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겁니다. 저격수가 총을 쏘았다는 건 바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얘기니까요. 저격수가 배치되고 사격을 하는 장면은 유혈 사태가 난 당일 하루 만에 사망자가 백 명을 넘나들게 된 이유를 간단 명료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이렇게 자국 국민을 사냥하듯 저격하도록 명령한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려다 공항에서 자신을 체포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차량으로 달아났다는 설, 요트를 타고 이미 해외로 달아났다는 설 등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자국민을 전투 중의 적군 취급한 대통령의 수준에 어울리는 뒷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제물로 대통령 퇴진은 이뤄냈지만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닙니다. 결국은 유럽연합 EU와의 협력을 통해 바닥에 다다른 경제를 살리는 일이 우선 제일 급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EU와 러시아의 대립 속에 동부와 서부가 대리전 양상으로 번질 경우 자칫 새로운 유혈 충돌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