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 논란이 막 불거졌던 지난 16일 민주당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은 브리핑 중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본질은 권력기관의 간첩 조작 사건이다" '간첩 사건'이 아닌 '간첩 조작 사건'으로 정의함으로써 자신이 규정한 사건의 본질을 드러낸 것입니다.
#2. 얼마전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6.4 지방선거를 두고 '지방정부 심판'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상반된 구호를 들고 나왔습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 출신 현역 단체장들이 장악한 지방정부에 대한 심판을,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을 강조함으로써 유권자 또는 지지자들에게 일종의 전략 목표를 알린 것입니다.
이처럼 사안의 속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사건의 본질이 달라집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고 부르면 어딘가 가벼운 사안으로 느껴지지만,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사건'이라고 칭하면 국기를 흔드는 엄중한 사건으로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사건이나 사안을 놓고, 이처럼 정파에 따라 다르게 정의하고, 달리 이름을 붙이는 것은 프레임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프레임 싸움입니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옳다고 여기는 바를 대중에게, 국민에게, 유권자에게 널리 퍼뜨려야하는데 그러기 위해 자기에게 유리한 인식의 틀을 던지는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세계 경제가 휘청한 상황에서 치른 2007년 대선에서 '위기 리더십', '시대정신', '경제 살리기' 같은 프레임이 선거판을 뒤흔든 끝에 이명박 후보를 당선시킨 것도, 2010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의 프레임이 박원순 후보를 당선시킨 것도 모두 프레임 승부의 결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공론의 장에서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프레임을 누가 선점하느냐가 현대 정파들의 경쟁에선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전략입니다.
어제(24일) 안철수 의원이 기초선거에서 공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내건 것은 '국민과의 약속과 신뢰'였습니다. 안철수 신당인 새정치연합 이름을 내걸지 못하고 선거에 나간다는 것은, 그 당의 예비후보들 입장에선 답답한 노릇이고 당장 현장에선 혼란이 불보듯 뻔합니다. (물론, 정당 표방 등 어떤 식으로든 안철수 신당 후보임을 드러낼 것임은 자명해보입니다만) 그럼에도 안 의원은 무공천이라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적어도 자신은 기존 정당과 달리 공약을 지켰다는 점을 앞으로도 계속 강조할 수 있습니다.
반면 새누리당은 '약속과 신뢰'의 측면에서 안철수 의원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형국이 됐습니다. 상향식 공천, 오픈 프라이머리 등 여러가지 대안을 내놨지만 대중은 "새누리당은 공약을 지키지 않았고, 안철수 의원은 약속을 지켰다"고 평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다른 프레임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새누리당의 논평에 나온 '책임정치론', "정당이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은 정당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새누리당은 "공천폐기 공약을 지키지 못했지만, 그에 버금가는 공천 개혁을 해냈다"고 강조하면서, 공천을 하지 않았을 때의 문제점을 적극 부각할 걸로 보입니다.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일, 정당의 책임정치, 저마다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하기에 경중을 따지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유권자 입장에선 기초공천을 둘러싼 각 정당의 논의 과정과 결정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는 있어보입니다. '약속은 지킨다'는 이미지를 얻어낸 안철수 의원과, '책임정치'라는 새 화두를 꺼내 든 새누리당. 두 세력의 프레임 승부 결과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