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中, 외신기자 40명 초청 '난징 대학살 만행' 고발


구글에서 SBS뉴스 즐겨찾기 추가
대표 이미지 영역 - SBS 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정권의 '우익 행보'와 맞물려 일본 내에서 난징(南京)대학살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이는 가운데 중국이 19일 40여 명의 외신기자를 난징으로 초청해 일제 만행을 고발했다.

중국 외교당국은 매년 외신기자 대상 초청행사를 하고 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사실상 중일 간 역사갈등 국면에서 국제여론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일본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1박2일 일정으로 짜인 이번 초청행사의 첫날 프로그램은 난징대학살 현장인 '난징대학살희생동포기념관'(이하 난징기념관)을 참관하고 당시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를 만나보는 내용 등으로 구성됐다.

1985년 문을 연 난징기념관은 두 차례 증축을 거쳐 건축면적은 2만 5천㎡, 전시면적은 1만 2천㎡에 달한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형물이 들어선 광장과 집단살해·매장지역인 '유해전시장', 대학살 관련 역사적 문서·사진들을 진열한 사료전시장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중국은 앞으로 기념관 부지에 '전승기념관'을 추가로 증축해 규모를 현재의 배 수준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주청산 난징기념관 관장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기념관이 자리 잡은 곳은 난징 서쪽에 위치한 장둥먼(江東門) 위"라며 "1937년 12월 대학살 당시 일본군에 의해 1만 명이 집단살해된 장소"라고 설명했다.

중국학계는 난징대학살 과정에서 최대 30만 명 이상이 살해된 것으로 본다.

기념관 측은 '난징 전범군사법정'의 조사기록을 인용해 "집단학살 19만 명, 개별적 살해 15만 명 등 총 30여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 학계는 대체로 전체 피해자 규모를 2만∼20만 명으로 추산한다.

광고
광고 영역

기념관 측은 "당시 난징시 건물의 3분의 1가량이 불에 탔고 시내에서는 2만 건 이상의 성폭행과 윤간사건이 발생했다"며 "무수한 재산 약탈행위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7살의 나이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는 샤수친(夏淑琴·85) 할머니는 기자들과 만나 "부모와 조부모를 포함해 모두 7명의 가족이 아무 잘못없이 살해당했다"고 증언했다.

처참한 과거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주 기념관장은 기념관 안에 새겨진 '(일본을) 용서할 수는 있어만 결코 잊을 수는 없다'는 문구를 거론하며 "결코 역사적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일본이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는다면 양국의 미래도 없다"고 주장했다.

기자들은 이날 난징당안관(기록보관소)도 참관했다.

난징당안관은 최근 언론을 통해 처음 공개했던 대학살 피해자·목격자의 증언록, 난징 군사법정 기록물의 원본자료들을 기자들 앞에서 다시 한번 노출했다.

중국은 이번 외신기자 초청행사가 '통상적 취재지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 기념관장 등은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갑자기 대학살 현장을 보여주는 배경을 설명해달라"는 일부 기자들 요청에 "특별한 배경은 없다"면서도 일본 우익인사들의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강하게 성토했다.

극우성향 인기작가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 NHK 경영위원이 최근 난징대학살은 근본적으로 없었으며 국민당을 이끌던 장제스(蔣介石)가 멋대로 과장해 만든 이야기라고 주장해 중국인들을 분노케 했다는 것이다.

주 기념관장의 이런 반응은 결국 일본의 역사적 만행을 세계에 다시 한번 부각하며 최근 영유권 분쟁 및 역사인식으로 첨예한 갈등관계에 있는 일본을 압박하고 싶다는 중국당국의 의도를 간접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달 16일에도 외신기자를 대거 초청해 랴오닝성 일대에 산재한 일본군국주의 침략현장을 둘러보는 취재를 지원하기도 했다.

(난징=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