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를 피고인이 썼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자살방조죄는 무죄가 선고돼야 합니다" 13일 서울고법 형사10부 재판장인 권기훈 부장판사가 무죄를 시사하는 판결 요지를 읽어내려가자 피고인석에 앉은 강기훈(50)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무죄를 선고하는 재판장의 짧은 한마디로 22년만에 누명을 벗었지만 강씨는 좀처럼 웃음을 지어 보이지 못했다. 눈물도 메말라버린 듯 눈시울은 붉어졌지만 끝내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강씨는 이날 재판시작 5분 전 검은 양복 차림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간암 투병 중인 그의 얼굴은 수척하다 못해 핏기도 없었다.
1년 넘게 끌어온 재심 재판의 처음부터 함께 싸워온 이석태 변호사 등 변호인단과 짧은 인사를 나눈 강씨는 법정을 가득 메운 취재진과 동료들을 잠시 둘러본 뒤 이내 자리에 앉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강씨는 재판장이 판결 이유를 읽어내려가는 30분간 단 한번도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줄곧 앞쪽만 내려다본 채 묵묵히 재판장의 설명을 들었다.
간간이 만감이 교차한 표정으로 눈을 감거나 입술을 꽉 깨물어 보이는 게 전부였다.
"장시간에 걸친 재심 심리에 참여해 준 사건관계인 여러분께 감사한다"는 말로 재판장이 선고를 마치자 법정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강씨의 동료 중 일부는 눈물을 터트렸고 이 변호사는 강씨를 힘껏 끌어안고 손을 맞잡았다.
일부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강 선배 누명 벗었어"라며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강씨는 "얼굴 좀 펴라"는 동료의 말에도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내내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법원 복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함세웅 신부가 "아들의 무죄를 위해 애쓰신 어머니가 몇 해 전 세상을 뜨셨다"고 말하자 한참을 참아온 강씨의 눈에 작은 이슬이 맺혔다.
함 신부가 "명동성당에 피신한 강씨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해 늘 무거운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고 소회를 밝히자 강씨도 목이 메는 듯 마른침을 삼켰다.
강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옆에서 지켜보는 분이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것을 잊지 않겠다"는 말로 그간의 힘든 심경을 대신했다.
통상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된 재심 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선고와 함께 유감을 표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발언이 없었다.
강씨도 이를 의식한 듯 선고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을 묻는 질문에 "재판부가 유감 표시도 하지 않는군요"라고 답했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씨의 유서대필 사건은 검찰이 1991년 5월 8일 분신자살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해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강씨를 기소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실정과 공권력의 폭력에 항의하는 대학생·노동자들의 분신이 잇따르던 상황이었다.
강씨는 1992년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6월을 확정 선고받은 뒤 만기출소했지만 사건이 조작된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2012년 10월 대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고 이날 22년만에 억울함을 벗었다.
그러나 검찰이 상고할 경우 확정판결까지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몰라 2012년 수술한 간암이 최근 재발한 강씨가 무죄 확정판결을 볼 수 있을 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