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미세먼지가 걷히고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낸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과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는 20년 전 세상을 떠난 두 고인을 기리는 추도식이 각각 열렸습니다. 故 정일권 전 국회의장과 故 문익환 목사가 주인공입니다. 정일권 전 국회의장의 추도식에는 강창희 국회의장과 김수한 전 국회의장, 노신영 전 총리, 이철승 헌정회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문 목사 추도식에는 아들 문성근씨를 비롯한 유가족,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문재인 의원, 정의당 천호선 대표 등 야당 국회의원과 시민들이 참석했습니다.
간도 용정의 광명 중학교 동창인 두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정 전 의장은 만주군관학교를 거쳐 해방 뒤 국군 창군 주역이 됐습니다. 이어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지내고 지리산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반공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군복을 벗은 뒤에도 박정희 대통령 옆에서 탄탄대로를 거쳤습니다. 6년 7개월간의 국무총리, 6년 간의 국회의장, 두 차례의 외무장관을 거치며 "대통령만 빼고는 모든 자리를 거쳤다"고 할 정도의 관운을 누렸습니다.
정 전 의장이 양지만 걸었다면 문익환 목사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문익환은 평양고보와 광명고보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학도병 징집에 반발해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했습니다. 그 후 목회자의 길을 걷다가 1975년 절친했던 장준하 사상계 대표의 변사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과의 싸움에 본격 뛰어들었습니다. 재야운동의 최전선에 나서, 8년여의 옥고를 비롯해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말년까지 통일운동에 앞장 섰습니다.
<사진 설명> 중학 동창이던 정일권과 문익환.
뒷줄 왼쪽부터 장준하 사상계 대표, 문익환, 시인 윤동주, 앞줄 앉은 이가 정일권
(사진 출처: 연세대학교 윤동주 기념사업회)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하루 차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 전 의장은 1994년 1월17일 하와이에서, 문 목사가 1월18일 서울 자택에서 각각 영면했습니다. 장례식도 1994년 1월22일 같은 날 치러졌습니다. 장례식 내용은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정 전 의장은 사회장으로 국회에서 영결식이 엄수된 반면, 문 목사의 경우 한신대 교정에서 겨레장으로 치러진 뒤 노제를 거쳐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습니다.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립니다. 어찌보면 두 사람은 양단으로 갈라진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 같은 인물들이 아닌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습니다. 1930년대 후반 같은 교복을 입고 한 카메라 앞에 섰던 두 청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던 70여년 전 그날, 그들은 이렇게 달라질 자신들의 인생을 예감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