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과 모스크바가 키에프를 두고 충돌하다' 슬로베니아의 일간지인 '델로'의 12월 17일 자 표제입니다. EU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는 상황을 적확하게 표현했습니다.
일단은 러시아의 판정승 분위기입니다. 당초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한 구 소련권 6개국을 묶어 유럽 쪽으로 끌어 들이려던 EU의 계획이 러시아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되는 분위기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시위에 대해 제가 썼던 논설위원 칼럼
에서도 지적했 듯이 EU는 EASTERN PARTNERSHIP을 통해 구 소련권의 일부 국가를 끌어 들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인 우크라이나에 대해 러시아가 대규모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면서 이제 우크라이나는 서쪽이 아닌 동쪽을 바라 보는 형국이 됐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17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천연 가스 가격을 대폭 인하해 주고, 우크라이나 국채 150억 달러를 사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지난 컬럼에서도 지적했지만 우크라이나에게 천연 가스 문제는 정권을 몇 차례라도 바꿀 수 있는 폭발력 있는 사안입니다. 누구라도 러시아의 압력을 견뎌 내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러시아가 이렇게 통 큰 지원을 할 수 있는 기저에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석유와 가스 부국으로 등장하면서 그만큼 재원도 풍부해 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협정에 대해 러시아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끌어 안는 대가가 너무 크다는 주장입니다. 일부에서는 150억 달러가 러시아 국민들을 위해 쓰여져야지 왜 신용도도 낮아서 위험한 국가에 들어 가느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리수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잡아 두려는 이유는 뭘까요? 러시아가 추진하는 관세 동맹이 해답입니다. 러시아는 구 소련권 국가들과 관세 동맹을 맺어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푸틴이 승승장구하는 배경이 바로 에너지인 만큼 에너지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주변국들을 묶어 두겠다는 심산입니다. 구 소련 당시의 위세가 아직도 그리운 모양입니다. 그러니 구 소련 당시 위성국들이 러시아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아주 불쾌하게 보고 있습니다. 전쟁 까지 치렀던 조지아가 EU와 협정을 체결하자 조지아의 주요 수출품인 와인 수입을 금지하는 등 강력한 경제 제재에 들어 갔습니다. 몰도바도 같은 처지에 놓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당초 러시아의 눈치를 보면서 유럽과도 경제 협정을 맺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경제 지원 규모가 문제가 됐습니다. 우크라이나는 EU에 200억 유로 지원을 기대했고, EU는 지나치게 많은 지원을 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다 12월 들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쪽으로 기울자 지원해 줄 수도 있다고 태도를 바꿨습니다. 그러나 때가 늦었습니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쪽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상황이 완전히 정리된 것일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친 유럽파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에도 20만명의 시위대가 운집했습니다. 이들은 "이것은 가든 파티가 아니다. 이것은 혁명이다"라고 외치고 있다고 독일의 쥐트도이체 차이퉁 신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이면 아마 러시아와 협정 체결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EU의 눈치를 보느라 시위 진압 책임 까지 물었던 야누코비치 정권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입니다.함부로 진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 까지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미 한 차례 시민 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던 야누코비치여서 시위가 계속되는 상황은 그리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지정학적으로도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있고, 국내적으로도 친 유럽파와 친 러시아파가 갈려 있는 우크라이나, 아직 까지는 야누코비치 정권의 눈치보기가 그런대로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이 상황이 언제 까지 갈 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중국과 일본의 치열한 기 싸움 속에 남북 갈등 까지 겪고 있는 우리의 처지와 비교됩니다. 친 유럽이냐, 친 러시아냐, 치열한 이념 갈등이 이어지는 것도 우리 사회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크라이나, 우리와 상관 없는 먼 나라 일이라고만 치부해 두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