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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장이머우, 영웅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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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무렵에 만난 장이머우

막 대학에 들어가 마음껏 해방감을 느낄 때였습니다. 웬만큼 유명한 영화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1988년 베를린 금곰상 수상작. 중국의 한 젊은 감독이 데뷔작으로 세계적인 영화제의 대상을 탔다는 소식에 서울 강남의 한 극장을 어렵게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만난 영화가 '붉은 수수밭'입니다. 무술을 소재로 하지 않은 중국(홍콩 포함) 영화는 그날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낯설고 어색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낯섦이 신선함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거친 듯 압도적인 이미지로 밀려오는 화면에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 붉은 대지 위에 붉은 수수밭, 수수밭을 태우는 붉은 화염,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붉은 노을은 그대로 뇌에 각인됐습니다. 며칠동안 눈만 감으면 그 장면이 떠올라 멀미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장이머우 감독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강렬했습니다. 한 몇 년 동안 장이머우가 내놓는 영화마다 찾아봤습니다. 국두, 홍등, 인생 등, 눈을 쏙 빼놓을 만큼 아름다운 화면에 담아낸 잔인한 삶의 진실에 가슴 아파해야했습니다. 그 때 장 감독이 국민당원이었던 아버지를 뒀고, 그 때문에 베이징에서 쫓겨나 시골에서 신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으며, 자신의 피를 팔아서 마련한 카메라로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영화에 저렇게 아릿한 정조가 담겼나보다 생각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만난 장이머우

장이머우라는 이름이 또다시 강하게 다가온 것은 20년 뒤 베이징 올림픽 때였습니다. 장 감독은 올림픽 개막식 총감독을 맡았습니다. 이미지의 대가인 만큼 어떤 놀랄 만한 장면을 연출할까? 기대가 작지 않았는데, 실제 그가 펼쳐낸 광경은 그런 기대조차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전에 없었고 이후에도 불가능한, 압도적이고 어마어마한 이미지의 향연이었습니다. 중국의 5천년 역사가 쌓아온 막대한 컨텐츠를 인구 13억의 대국다운 황당한 규모에 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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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무 거대해서 소화하기가 버거웠습니다. 그럼에도 한 인간이 이런 정도까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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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수민족 공연을 통해 만난 장이머우

중국 광시자치구 구이린과 윈난성 리장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장이머우 감독이 그 지역 소수민족들을 동원해 만든 '인상'이라는 대형극이 있다는 점입니다.

두 '인상'쇼의 줄거리와 내용, 장면은 다릅니다. 하지만 소수민족의 문화와 생활, 정조를 그 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속에 그림처럼 펼쳐놓았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장이머우가 구상해서인지 두 '인상'쇼의 이미지는 전혀 다르면서도 매우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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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상'쇼의 또 하나 같은 점은 공연에 참가하는 소수민족들에게 막대한 수입을 가져다준다는 점입니다. 구이린에서 이 소수민족들의 마을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깨끗하고 잘 정리돼있었습니다. 원래는 19세기에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가난하고 쇠락한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 감독의 '인상'쇼에 출연해 공연 수입을 얻게 되면서 살림살이가 완전히 폈습니다.

이제는 마을 전체가 공연 참가 수입만으로도 풍족하게 먹고 산다고 합니다. 리장의 소수민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두 지역 소수민족들에게 장이머우는 영웅입니다. 장 감독에 대한 존경이 하늘을 찌릅니다. 한 천재가 수천명을 먹여 살린다는 경구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바람둥이로 유명한 장이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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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명실상부한 '국민감독' 장이머우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여성 문제에 몹시 약하다는 점입니다. 예술가라 감정이 풍부해서일까요? 여자 관계가 꽤나 복잡했습니다.

데뷔작인 '붉은 수수밭'의 여주인공으로 자신이 발탁했던 궁리는 세계적인 스타가 됐습니다. 이후 함께 줄줄이 명작을 내놨습니다. 작업을 같이 하면서 두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장 감독은 이미 학창시절 결혼한 샤오화라는 부인과 딸을 둔 유부남이었습니다. 샤오화는 말 그대로 조강지처였습니다. 장 감독이 어려운 시절을 함께 헤쳐나왔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장 감독의 가족은 물론, 전 중국인이 샤오화를 동정했습니다. 장 감독을 비난했습니다. 그래도 장이머우는 끝내 샤오화와 이혼했습니다. 그렇다고 궁리와 끝까지 함께 한 것도 아닙니다. 끝내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장 감독이 거부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한 여자에게 얽매이기 싫어서라고 중국인들은 수군거렸습니다. 과연 궁리와 헤어진 장이머우는 역시 자신이 발탁해 스타로 만든 장쯔이를 비롯해 여러 여배우들과 염문설을 뿌렸습니다. 심지어 '모뉘랑'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습니다. '본드걸'처럼 '장이모의 여배우'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중국인들은 장이모의 이런 여성편력을 웃고 넘겼습니다. '영웅은 호색한 법'이라는 중국의 오래된 속설이 적용됐습니다.

'한자녀 규정'을 무시한 영웅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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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영웅 장이머우가 최근 몰락하고 있습니다. 전 중국인이 등을 돌린 모습입니다. 발단은 2011년 한 연예 전문 잡지의 폭로 기사였습니다. '남도오락'은 장이머우가 천팅이라는 31살 연하의 여성과 결혼을 했으며 세명의 자녀까지 뒀다고 폭로했습니다. 중국은 노감독이 그렇게 어린 여성을 사귄다는 소식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더 놀라워 했던 것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평생의 연인이었던 궁리와는 끝내 거부했던 '결혼'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부인 천팅과 세 아이의 사진이 각종 연예 기사에 실리면서 '왜 장 감독은 한자녀 정책을 지키지 않는거야'라는 반발이 불거졌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장 감독은 첫 부인과의 사이에 딸 한 명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1인 1자녀' 규정에 따라 더 이상은 자녀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버젓이 3명이나 더 가진 것입니다.

이후 각종 소문이 돌았습니다. 또다른 세 명의 여성으로부터 혼외 자녀를 더 가져서 모두 합해 7명이나 된다더라. 자녀들을 다 해외에서 낳아 외국 시민권자로 키우고 있다더라. 자녀를 한 명 나을 때마다 아내 천팅에게 천만 위안씩 선물로 줬다더라 등등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장 감독의 대처가 중국인들의 감정에 기름을 끼얹었습니다. 아예 아무 대꾸도 않고 무시했습니다. 그러자 소문은 갈수록 커지고 기정사실화 됐습니다. 장 감독이 '중국법'을 우습게 여긴다는 여론이 비등했습니다. 장 감독의 호구가 있는 장쑤성 우시시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명백한 범법자를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놔둔다고 욕했습니다. 우시시는 이에 대해 장 감독을 세 차례나 조사하려고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고 변명했습니다. 불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진 셈이었습니다. 유명인 장이머우의 행적을 찾지 못한다는게 말이나 되냐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장 감독측은 손을 들었습니다. 세 명의 자녀를 불법적으로 가진 사실을 인정하고 곧 조사를 받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싸늘해진 중국인들의 시선은 돌아오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영웅에 왜 이렇게 화났나?

중국인의 성격을 지칭하는 말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만만디'입니다. 느리다는 뜻입니다. 한 번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일단 마음을 정하면 쉽게 바뀌지도 않습니다. 장이머우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분노와 증오로 바뀐 이상 이를 되돌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중국인들은 왜 이렇게 영웅 장이머우에 화가 났을까요? 우선 장이모의 위상 때문입니다. 그냥 유명한 감독이 아닙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총연출한, 중국을 상징하는 감독입니다. 그런 감독의 탈법 행위에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믿고 법을 무시하는 태도도 격한 반발을 부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높은 지위에 오를 수록, 많은 인기를 얻을 수록 더더욱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특히 자신의 힘을 믿고 일반인들을 옭죄는 법을 지키지 않는 모습에는 더욱 분노합니다. 윗사람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완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한자녀 정책'에 대한 불만이 장 감독에게 투영돼 폭발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마음대로 자녀를 가질 수 없도록 한 제도는 그 취지의 정당성을 떠나 대단히 강제적이고 폭압적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또 한명의 자녀를 간절히 바라는 부부에게는 세상에 이런 악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국의 서슬에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 좋아하고, 존경하던 유명인은 이를 가볍게 무시합니다. 이제까지 쌓아놓은 불만이 그에 대한 분노로 표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때마침 중국 정부가 '한자녀 정책' 완화를 추진하면서 '산아제한'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자 장 감독은 더더욱이나 씹기 알맞은 대상이 된 셈입니다.

장 감독은 4백억 원이 넘는 벌금을 물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우시시에서 한 자녀 규정을 어길 경우 자녀가 태어난 전해의 우시 평균 연소득의 8에서 10배의 돈을 벌금으로 내야합니다. 위반자의 수입이 많으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중국 언론들이 이 기간 장 감독의 수입을 근거로 벌금을 따져보니 대략 2억4천만 위안, 우리 돈 4백17억원에 달한다고 친절하게 계산했습니다. 뒤늦은 자녀 욕심에 장 감독은 평생 모아온 부까지 다 날리게 생겼습니다.

영웅의 역할은 쉽지 않습니다. 보는 눈도 많아지고 거는 기대도 커지고 요구하는 수준도 높아집니다. 장 감독은 그럴지 모릅니다. 누가 나를 영웅으로 여겨달라 했냐고. 어쩌겠습니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웅으로 떠받들려진다 느끼는 순간 내 감정, 욕망, 자유를 다 내려놓아어야 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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