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이기에 요란한 결혼식”
영화감독 김조광수 씨(48)와 영화사 레인보우팩토리의 대표 김승환 씨(29)가 지난 7일 오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공개적인 동성 결혼식을 올렸다. '당연한 결혼식-어느 멋진 날'이라는 타이틀도 걸었다.
두 사람은 앞서 결혼식이 열릴 서울 청계천 광통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의 결혼을 시작으로 결혼하고 싶은 많은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처럼 결혼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공개 결혼식을 강행한 이유를 밝혔다. 김조 감독은 "우리가 이성애자였다면 가수 이효리처럼 조용히 결혼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동성애자 결합에 대해 한 번도 사회적으로 논의조차 한 적이 없다"고 말해 '동성결혼'에 대한 인식 전환과 법적인 허용을 촉구했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결혼식 현장을 찾아 예배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등 무대 설치 작업을 방해해 준비 작업이 지연되기도 했으며 결혼식 도중엔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불청객이 식장에 오물을 투척하는 불상사가 벌어져 경찰에 연행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곡절 속에서도 이들은 지인인 변영주, 김태용, 이해영 감독의 사회와 강허달림, 이디오테잎, 허클베리핀 등의 공연, 그리고 배우 류현경, 하리수, 이승준,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진선미 민주당 의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 등 1000여명 하객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마쳤다.
이들의 결혼식은 우리나라에서도 동성결혼에 대한 논의를 펴고 이를 허용할 것을 촉구한 공개적인 퍼포먼스로 기록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동성애자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의 동성결혼 허용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동성결혼 허용 국가 갈수록 늘어나
세계 최초로 동성애자 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한 나라는 2000년 네덜란드이며, 이후 2003년 벨기에가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2005년에 캐나다와 스페인이, 2009년에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2010년에는 포르투갈과 아이슬란드, 아르헨티나가 동성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했다. 영국은 집권 보수당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1999년 동성커플 간의 결합을 공인하는 시민연대협약(PACS)을 통과시킨데 이어 국민들의 거센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23일 동성 결혼을 합법화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세계 14번째의 허용 국가가 됐다. 그 직전인 4월10일 우루과이가, 17일엔 뉴질랜드가 잇달아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미국은 개별 주마다 다르다. 1996년 하와이 주에서 동성커플도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난 바 있고, 2000년 7월 버몬트 주는 동성커플의 결혼을 ‘시민적 결연(civil union)’이라고 명명하고 사실상 부부로 인정했다. 이어 2004년 2월 미국 매사추세츠 주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완전한 권리를 부여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만은 2003년에 처음으로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만들었으나,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으며 이스라엘은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외국에서 결혼한 경우만 합법적인 혼인 관계로 인정하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수도인 멕시코시티는 2009년부터 동성결혼을 허용했고, 다른 지역에서는 멕시코시티에서 맺은 동성결혼 계약을 승인해 주는 방식으로 동성결혼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프리카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2006년부터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지만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이슬람 교리에 근거하여 동성애나 동성애자의 동거를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아프가니스탄, 수단 등에서는 적발될 경우 최고 사형에 처하고 대다수 중동 국가들도 동성애 자체를 중범죄로 다루고 있다.
역지사지의 이해 전제돼야
이처럼 나라마다 사회적 논의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동성결혼 제도가 다양하게 운용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갈수록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커밍아웃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동성애자 동거에 이어 동성결혼식까지 공개적으로 열리는 단계에 왔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유교적 전통에다 기독교 등 주요 종교의 반대, 보수적인 문화 등을 감안한다면 동성결혼의 허용까지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 많은 논의와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이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전제돼야 할 것은 동성애자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느냐 이다. 입장을 바꿔놓고 지금 세상에서 모두 동성 대 동성의 사랑이 인간 본연의 이치이자 본능으로 작동하고 동성결혼이 정상적인 사회 제도로 돼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자기 자신은 이성만 사랑하는 사람 즉 이성애자로 태어났다고 한다면, 이성을 사랑하는 게 죄악시 되고 이성과의 결혼은 허용되지 않는 가운데 동성과의 결혼만 강요당한다면 자기 자신은 과연 어떻겠는가? 여기에다 몹시 사랑하는 이성이 있다면 누구에게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막말로 돌아버릴 것이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식은 이 같은 역지사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이해가 전제돼 논의를 시작한다 하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율 문제, 동성애 부부의 결혼이 가져올 입양과 차별 문제 등 여러 부작용, 찬반론자의 대립 같은 사회 갈등으로 인한 비용 등 우리사회의 특수한 상황과 사정도 만만치 않다. 그런 만큼 이를 최대한 감안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원론 수준 외에는 더 이상의 논의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동성결혼이 얼마나 뜨거운 감자인지 논의를 풀어갈수록 절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