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원룸’이란 곳에 발을 들였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한다. 그곳은 말 그대로 ONE ROOM, 단칸방이었다. 무릇 집이란 부엌과 거실, 화장실, 안방, 작은 방이 따로 존재하고 각각의 고유한 기능을 한다고 믿고 자라온 나로선 그 모든 기능을 손바닥만 한 방에서 해결해야 한단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진 직감하지 못했다. 앞으로 수년간 원룸을 전전하게 될 내 운명을...
# 원룸 관리비, 뭐가 이렇게 비싸?
회사원 24살 박 모 씨는 얼마 전 서울 서교동에 있는 10평짜리 원룸으로 이사했다. 관리비는 매달 7만 원. 수도·전기·가스 사용료는 모두 따로 납부한다. 인터넷과 TV 수신료는 별도. 건물에 상주하는 경비원도 없고 엘리베이터도 없다. 주차장이 있지만 사용하려면 매달 3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전에 살던 집에선 전기·가스 사용료만 따로 내고 수도·인터넷·TV 수신료를 포함한 관리비가 5만 원이었는데, 이사를 하고 나니 관리비 포함사항은 줄고 관리비는 오히려 늘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집주인에게 물었지만 ‘공용전기와 건물 청소비용 등으로 쓰인다.’는 답변뿐 자세한 사용내역은 들을 수 없었다.
박 씨가 내는 관리비는 평당 7,000원 꼴. 얼마나 비싼지는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같은 지역인 서울 마포구 아파트 평균 관리비는 올해 상반기 기준 평당 2,442원. 대략 셈을 해 보면 1/3 수준이다. 공용 전기 잡아먹는 승강기도, 24시간 상주하는 경비원도, 손질하고 가꿔야 할 정원이나 산책로도 없는 원룸 관리비가 아파트 관리비보다 세 배 정도 비싸단 뜻. 따져보면 7평짜리 원룸 관리비가 24평짜리 아파트 관리비와 같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나만 비싸게 내는 건가?’ 박 씨는 다른 사람들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길 건너 옆 동네 사는 대학생을 만나 물었더니 한 달에 5만 원을 내고 있단다. 전기, 가스 사용료는 별도로. 인터넷과 수도세를 포함한 비용이다. 같은 동네에서 다른 대학생을 만났다. 아까 만난 친구와 비슷한 크기 원룸에 살고 있는데 관리비는 매달 1만 원씩 내고 있단다. 관리비 항목은 같은데 집주인에게 내는 돈은 다섯 배나 차이가 난다. 도대체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기자 본인의 사례를 인터뷰 과정과 엮어 각색해봤습니다.)
# 관리비야, 월세야? 세입자 울리는 ‘눈먼 돈’
주택법은 공동주택의 관리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주택법 제45조(관리비) >>
① 공동주택의 입주자 및 사용자는 그 공동주택의 유지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관리비를 관리주체에게 내야 한다.
② 제1항에 따른 관리비의 내용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주택법 시행령 제58조 >>
① 법 제45조에 따른 관리비는 다음 각 호의 비목의 월별금액의 합계액으로 한다.
1.일반관리비 2.청소비 3.경비비 4.소독비 5.승강기유지비 6.난방비 7.급탕비 8.수선유지비 9.위탁관리수수료
⑥관리주체는 관리비등을 통합하여 부과하는 때에는 그 수입 및 집행내역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리하여 입주자등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정리해보자면 공동주택 관리자는 정해진 항목에만 관리비를 받고 항목별 사용내역을 입주자에게 공개해야 한다. 공용비용을 사용한 다음 매달 청소비 얼마, 경비비 얼마, 승강기유지비 얼마 등 지출 사항을 항목마다 고지하고 세대별로 1/N씩 나눠 관리비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집주인이 부당한 관리비를 징수하지 못하도록 세입자를 보호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문제는 해당 법령의 적용 범위이다. ‘공동주택’은 300세대 이상 주택이나 150세대 이상 승강기 설치 주택 등을 의미한다. 고로 원룸과 오피스텔과 같은 150세대 미만 집합건물은 공동주택에 해당하지 않는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다 보니 이들 소형 주택 세입자에겐 관리비용을 사후에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매달 3만 원 혹은 5만 원씩 계약할 때부터 일정 금액을 정해서 관리비로 걷는 기형적인 방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책정 기준 자체가 모호하고 비용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세입자 입장에선 알기 어려운 상황. 대부분 세입자는 관리비를 순수한 관리비로 생각하지 않고 월세의 일부로 생각한다. 집주인 역시 월세를 올리는 수단으로 관리비를 악용하곤 한다. 그야말로 ‘눈먼 돈’인 셈이다.
# 세입자의 권리를 찾을 방법은?
지난해 말 개정된 집합건물법에 따르면 지자체마다 ‘집합건물 분쟁조정위원회’를 두어야 한다. 집주인-세입자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합의점을 찾도록 조정해주는 기능을 맡고 있다. 기존엔 권리구제 수단이 소송뿐이었는데 이전 단계에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절차를 새로 만든 것이다.
며칠 전 경기도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최초로 분쟁조정위 운영조례 제정을 입법예고했다. 사실상 분쟁조정위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아직까지 경기도 한 곳뿐. 취재해보니 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부터 분쟁조정의뢰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갈등이 많다는 뜻이다. 어디 경기도뿐이겠는가. 원룸 세입자가 가장 많은 서울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갈등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만 해도 안타깝다.
정부든 지자체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개정된 법이 유명무실해지도록 두면 안 된다. 사후적인 권리 구제 수단이지만 ‘분쟁조정위’를 만들어 억울한 이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한편으론 원룸에 대한 관리비 책정 기준을 만드는 근본적인 개선안이 필요하다. 원룸 세입자는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인 경우가 많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조금 더 희망적인 모습을 보이고 보호해야 하는 건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져야 할 의무이고 도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