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남북관계에서 선제적으로 '실용주의적 행보'를 보이고 있어 관심을 끈다.
겉으로는 여전히 자존심을 고수하는 듯하지만 실제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남측의 요구를 주도적으로 수용하는 모양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18일 남측의 이산가족 상봉 실무접촉 제의를 수용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을 제안하면서 ▲관광객 사건 재발방지 ▲신변안전 ▲재산 문제 등 남측의 요구사항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조평통은 지난 7일 개성공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개성공단 잠정중단 조치의 해제 및 기업의 출입 전면허용 ▲북측 근로자의 정상출근 보장 ▲남측 인원의 신변안전 담보 및 재산 보호 등 재가동을 염두에 둔 3가지 조치를 선제적으로 밝혔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해 남측이 요구할 수 있는, 즉 북측이 취해야 할 조치를 스스로 먼저 밝힘으로써 남측의 수용을 적극 유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일 체제에서나 김정은 체제에서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거의 보기 드물었던 대응 행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은 개성공단 7차 실무회담 합의서에서도 비록 재발방지 보장의 주체를 남과 북으로 박아 겉으로는 자존심을 세운 듯했지만 내용에서는 통행 제한 및 근로자 철수 등 북한의 책임을 사실상 적시하는데 동의했다.
북한의 실용적 행보는 19일 시작된 한미 정례군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에 대한 대응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 북한이 한미의 UFG 연습에 대해 침묵을 지킨 적은 별로 없었다.
남북관계 경색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유화 국면에서조차 한미 군사연습에 대해서만큼은 남측을 비난해 악화 분위기를 주도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평통이나 외무성 등 주요 기관의 입장 발표나 매체를 동원한 비난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가 어렵게 성사된 후 마련된 남북관계 호전 분위기에 자칫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행위를 자제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행태는 북한의 대내외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책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도 김정은 정권이 강행한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갓 출범한 김정은 체제의 존립을 흔들 수 있을 정도로 강화됐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중국까지 적극 동참한데다 미국은 북한의 대화 제의에도 진정성이 없다며 지금껏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면서 남북관계의 틀을 다시 만들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 김정일 체제의 북한은 '도발→협상·보상→재도발→재협상'을 거듭하면서 실익을 챙겼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이 먹히지 않을 뿐 더러 남북관계 개선이 최우선인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결국 북한이 국제사회의 변화를 읽고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룡해 특사의 방중 이후 북한의 대남 및 대외적인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살피면서 이에 맞춰가는 모습을 보이는 양상"이라고 해석했다.
이 같은 북한의 형태 변화는 김정은 체제의 권력 구조와도 관련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 체제의 실권자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노동당과 내각을 장악하고 경제와 외교, 대남정책 등 국정 전반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의 후폭풍으로 군부의 영향력이 조금은 축소된 상황에서 장 부위원장을 비롯한 '대화파'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북소식통은 "장성택 부위원장은 김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해 북중 및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북한에 유리한 대외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경제와 주민생활을 일으켜 세우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런 방향에서 국정을 운영하도록 보좌하는 것으로 있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