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7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연기하면서 법조계와 재계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SK그룹은 선고 연기가 재판부의 최종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 회장의 재판에서 '베일에 가려진 핵심 인물'로 지목됐던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이 최근 대만에서 체포된 점도 돌발 변수로 떠올랐다.
김씨가 체포되자 최 회장 측은 "김씨가 사건의 주범이며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면서 변론재개를 신청했다.
검찰도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긴장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4부(문용선 부장판사)는 "기록 검토와 판결 작성을 위해 추가로 시간이 필요하다"며 9일로 예정됐던 선고 공판을 다음달 13일로 연기했다.
◇예상 시나리오 중 최종 선택은 = 김원홍씨가 대만에서 붙잡힌 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항소심 재판이 다시 시작된 셈"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재판부가 그동안 공판에서 수차례 김씨를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했기 때문에 추가 심리 역시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가 "변론 재개는 불허한 것"이라고 명시하면서 '예상 시나리오'는 좀 더 복잡해졌다.
가능성은 크게 3가지다.
선고 강행, 변론 재개 후 선고, 법정 공방 지속 등이다.
먼저 재판부는 다음달 13일까지 김씨가 국내로 송환되지 않으면 예정대로 선고를 할 가능성이 있다.
주요 피고인의 구속 만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는 오는 11일, 최 회장은 다음달 30일이 구속 만기이다.
선고 연기가 재판부의 설명 그대로 '완성도 높은 판결문 작성'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1심 재판부도 선고 기일을 작년 12월 28일에서 올해 1월 31일로 한 달 이상 미룬 적이 있다.
재판부가 변론을 재개해 심리를 더 하고서 일정 기간 뒤 선고할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그만큼 김씨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지난달 공판에서 "(김원홍이) 뒤에 숨어서 사건을 기획·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 3위 대기업 회장과 부회장이 김씨한테 홀린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만약 변론이 재개될 경우 새로운 주장과 증거가 제시되면서 법정 공방이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진다.
◇변론 재개는 재판부 재량 = 형사소송법 제305조에 따르면 법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직권으로 또는 검사,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신청에 의해 변론을 재개할 수 있다.
즉 변론 재개 여부는 전적으로 법원의 재량에 따른다.
수많은 판례도 재판부가 변론종결 이후에 변론재개 신청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일부 예외도 있다.
'피고인의 방어권, 변호인의 변호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돼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경우', '변론종결 전에 주장·증명을 제출할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했고, 그 주장·증명의 대상이 판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경우'에는 변론 재개를 해야 한다는 판례도 있다.
◇SK '김원홍 기획입국설'에 긴장 = SK그룹은 김원홍씨의 체포와 최 회장 재판의 선고 연기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수년 간 수사망을 피해 다닌 김씨가 최 회장의 선고를 불과 9일 앞두고 지난달 말 대만에서 전격 체포된 게 석연치 않다는 얘기가 나돈다.
김원홍씨는 검찰이 기소한 최 회장의 '사건 구도'를 근본부터 흔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기존 공소사실에 따라 최 회장의 유죄를 입증해야 할 검찰로서는 김씨의 역할이 부각될수록 사건 구도에 금이 가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 회장은 항소심 막판에 "김씨한테 홀려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민사 소송도 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기 고소와 민사 소송은 당사자 합의로 해결할 수 있는 반면 항소심에서 공소사실을 뒤집는 '결정타'가 나오지 않으면 최 회장은 무거운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SK로서는 김씨가 법정에 나와 유리한 증언을 해주는 '도움'이 필요한 입장이다.
물론 정반대로 김씨가 불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검찰은 김씨가 국내로 송환되면 곧바로 체포해 강도 높게 수사할 방침이다.
체포 배경, 재판 진행에 영향을 주기 위한 증인 매수 등 일련의 불법행위 여부 등도 조사할 가능성이 있다.
김원홍씨의 전격 등장과 재판부의 선고 연기 등 막판에 뜨겁게 달아오른 최 회장 재판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