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 철학과 교수인 셸리 케이건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사람의 죽음은 시계가 멈춘 것과 같이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현상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했다. 종교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 좀 불편하긴 했지만 죽음이란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으며 또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케이건 교수는 사람들이 죽음을 싫어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죽음이 더 나은 삶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도 다른 의미로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대목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정말 그럴까.
지난 주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김 종학 감독의 자살이 단연 화제였다. 당대 최고의 감독을 잃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가 방송되는 날 약속된 시간마다 TV앞에 앉아 드라마에 빠져들던 그나마 조금 젊던 당시를 회상했다.
김 감독은 1991년부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통해 일제 시대와 해방 그리고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통한의 역사 속에서도 여명의 빛을 찾아 헤메는 남녀 주인공들의 처절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국민들에게 애환이 어우러지는 감동의 휴머니즘을 선사했다. 이어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서는 철권 독재가 온 나라를 짓밟고 인권을 유린하던 그 날들도 언젠간 끝이 온다며 모래시계라는 상징성을 통해 참고 견디고 버티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랬던 김 감독이 갑작스럽게 하루 3만 원짜리 고시방에서 목숨을 끊었다. 평생 PD로서 창작 활동에만 매달려 온 사람이 돈 문제로 주변사람들과의 불화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고 자신에게 씌워진 사기와 횡령과 배임이라는 죄명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죄인처럼 다루며 취조하는 젊은 검사의 태도에서도 큰 굴욕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들도 생명과 무게를 견주기에는 가벼워 보인다.
좁은 고시방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문들을 꼭꼭 닫으면서 그가 작품속에서 누누이 강조한 참고 견디면 반드시 온다는 새로운 희망의 날들은 드라마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위대한 감독을 졸지에 잃은 온 국민은 비통해 한다. 그가 꿈꿔왔던 모래시계 2편은 이제 사라져 버렸다.
개미 허리같은 관을 통해 모래가 한없이 내려가기만 하는 모래시계는 간단하게 뒤집기만 하면 다시 위쪽이 충만해진다. 살아가면서 밑으로 밑으로 꺼져가는 것 같은 깊은 절망의 순간에도 신의 손길과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삶의 모래시계는 의외로 간단하게 뒤집을 수 있고 다시 생의 활력으로 충만해 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생명이란 신이 우리에게 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힘들다고 아프다고 외롭다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