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한 지가 벌써 1달이 다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정부 조직 개편은 마무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조직 개편이라는 것이 업무 조정을 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대통령이 결심을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법률을 고쳐야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크게는 대통령과 국회,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정부-여당과 야당의 논의를 거쳐야 하고, 결론적으로 야당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물론 국회는 법절차에 따라 안건을 처리해야 할 것이고요.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정부조직 개편 방향과 관련해서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별로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편안을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창조 경제’라는 화두에 목을 매는 것으로 보이는 박 대통령은 몇 개 부서에 흩어져 있던 정보통신과 과학 관련 기능을 합친 ‘미래창조과학부’를 국정 운영의 핵심으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니 미래부의 기능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협상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이겠지요. 15일에도 여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SO가 빠지면 미래부는 껍데기”라며 사실상 미래부 업무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말아달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보도가 됐습니다.
SO는, System Operator의 약자입니다. 지역별로 유료케이블 방송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이죠. 케이블 방송은 국내에서는 1995년에 처음 도입됐으니 거의 20년 다 되어가는 서비스입니다. 케이블 방송이 도입되기 전부터 방송기자 생활을 하면서 나름 방송 통신 융합 등의 이슈에 관심이 많습니다만, 케이블 SO들이 핵심이 되는 창조 경제가 어떤 것인지는 솔직히 감이 오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과 여당은 SO 관할권이 정부조직 개편안 통과를 막을 만큼 중요한 거냐며 야당을 몰아붙이는데, 거꾸로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면 또 그것도 양보 못하냐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어쨌든 여야간에 줄다리기를 거쳐 ‘미래창조과학부’가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이렇게 ‘박근혜’라는 이미지가 깊이 새겨진 부서가 장수 부서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중앙 정부 기관을 이렇게 대통령 바뀔 때마다 바꾸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것일까요? 그것도, 우리 정도의 규모가 되는 나라의 중앙 정부 조직을, 대통령 선거 끝난 뒤에 만들어진 인수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여론 수렴이나 연구도 없이 뚝딱뚝딱 고쳐버려도 되는 걸까요?
우리 정부 부처는 정말 수시로 이름이 바뀝니다.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보여주기 위한 측면이 큽니다. 점점 그런 경향이 더 커지고 있죠. 정부 수립 때부터 명칭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국방부와 법무부뿐인 것 같습니다. 자주 이름이 바뀐 부처들 몇 개만 살펴볼까요?
지금의 행정안전부는 과거 대한민국 정부 출범 당시부터 있던 총무처와 내무부를 합쳐서 1998년에 만들어진 행정자치부를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2008년에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전행정부로 또 이름이 바뀝니다. “국민행복의 필수조건인 국민생활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관리 총괄부처로서의 위상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 이름을 바꾼다고 합니다. 안전을 강화하려면, 이렇게 정부 부처 이름을 바꿔야 할까요?
통상 관련 부처의 변화도 극적입니다. 정부 수립 당시 설치된 부서는 상공부입니다. 1993년 동력자원부의 업무를 넘겨받아 상공자원부가 됐다가 1994년에는 통상산업부가 됩니다. 그러다가 1998년 외교부가 외교통상부로 확대되면서 통상기능을 넘겨주고 산업자원부로 바뀝니다. 그리고 역시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지식경제부라고 또 이름을 바꿉니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지식 경제’를 브랜드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지식경제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부서 연혁을 보면 상공부, 동력자원부, 상공자원부, 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 등에서 이름과 기능이 변해온 이력이 아주 화려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력도 부족한지, 이번에 다시 통상 기능을 넘겨받으면서 산업통상자원부로 바뀝니다.
반대로 외교부는 장관급을 본부장으로 하는 통상교섭본부를 산하에 거느리면서 외교와 통상 기능을 통합해서 15년 가까이 운영이 되다가 다시 외교부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사이에 통상 업무로 방향을 바꿨던 외교관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앞으로 또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사이의 관계 정립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요. 외국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부서가 헷갈려서 생기는 촌극도 적지 않을 겁니다. 우리처럼 중앙 정부 부처가 수시로 바뀌는 게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기획재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때 기존의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쳐 만들어졌습니다. 모태가 된 것은 정부 수립 때 출범한 재무부입니다. 1994년에 이 재무부를 1961년에 만들어졌던 경제기획원과 합치면서 재정경제원이 됐다가 1998년 재정경제부가 됩니다. 그게 다시 2008년에 기획예산처와 합쳐진 거죠.
이번에 해양 기능을 내어놓고 국토교통부가 되는 국토해양부의 변신도 만만찮습니다. 시작은 1948년 11월에 만들어진 교통부가 먼저입니다. 1962년에 건설부가 생깁니다. 1994년에는 건설교통부로 두 부서가 합쳐집니다. 1996년에는 해양수산부가 신설되는데 역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해양수산부를 합쳐서 국토해양부가 출범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5년 만에 해양 기능을 다시 내어놓고 국토교통부로 돌아가는 거죠. 거꾸로 해양수산부는 1996년에 신설됐다가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사라졌는데, 5년 만에 그 이름 그대로 부활하게 됐습니다. 그 사이에 이렇게 부서가 폐지와 신설을 반복할 만한 큰 일이 있었을까요?
교육, 과학 담당 부서도 그렇습니다. 문교부가 1948년에, 과학기술처는 1960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문교부는 1990년에 교육부로 이름이 바뀌죠. 과학기술처는 1998년에 과학기술부로 확대됩니다. 2001년에는 교육부가 인적자원개발정책을 강화한다면서 교육인적자원부로 명칭을 바꿉니다. 사람을 대놓고 ‘인적자원’이라고 부르는 게 영 편치 않더군요. 그러다 결국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합쳐서 교육과학기술부라는 거대 부서를 만듭니다. 그런데 5년 만에 교육부가 다시 떨어져 나오고 과학 기능에 정보통신부문을 합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대단히 독특한 이름의 부서가 되는 겁니다. 출범도 하기 전에 장관 후보가 낙마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정보통신 기능은 과거 정부 수립과 함께 발족했던 체신부가 1994년 정보통신부로 개편됐다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해체가 되고 상당 부분이 방송통신위원회로 넘겨졌었는데 이번에 다시 방통위에서 분리되어 미래창조과학부로 옮겨지게 됩니다. 참, 대단한 변신입니다.
지금의 고용노동부는 노동부에서 2008년에 명칭이 바뀌어서 노동부가 아닌 고용부로 불리면서 도대체 핵심 기능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만들고 있죠.
대충 살펴보아도 이 정도입니다. 정말 현란하죠. 제가 1991년 처음 기자가 될 무렵에는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어느 정도 상식을 갖춘 사람들은 우리 중앙 정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정도는 줄줄 꿰고 살았습니다.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장관 이름도 많이 알았죠. 그런데 지금은요, 솔직히 저도 정확한 정부 부처의 명칭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때로는 정부 부처들의 업무 구분도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하나 특징적인 것은 최근 들어서 점점 더 정부 조직 바꾸는 게 잦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사회가 변화 발전해 가면서 정부 부서의 명칭이나 조직을 개편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중앙 행정기구의 이름을 마구 바꾸는 게 꼭 필요할까요? 대통령 바뀔 때마다 정부 부서의 명칭을 바꾸느라 법을 고치느라 실랑이하고 기존 부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각종 양식이나 자료를 바꾸느라 부산을 떨어야 하는 걸까요? 사실 이런 이벤트성 정치에 들어가는 비용을 따져보면 상당할 겁니다. 기업체가 이름을 바꿔도 등기 비용부터 각종 서류 고치는 데에만 상당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다른 나라도 다들 이렇게 할까요? 여러 사례를 비교해볼 수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경우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경우 우리의 외교부에 해당하는 국무부(명칭만 Department of Foreign Affairs에서 Department of State로 바뀌었습니다)와 재무부는 1789년, 내무부는 1849년, 농업부는 1862년, 법무부는 1789년에 검찰총장으로 시작했? 1870년에 정부 부처로 승격돼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지금도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임합니다).
통상부는 1903년에 통상노동부로 출범했다가 1913년에 노동부와 분리됐고, 국방부는 1947년에 1789년부터 있던 전쟁부의 이름이 바뀌어서 만들어졌습니다. 주택도시개발부는 1965년, 교통부 1966년, 에너지부 1977년, 보훈부 1989년에 만들어졌습니다. 1953년에 만들어졌던 보건교육복지부는 1980년에 교육부가 갈라져 나가면서 보건부로 이름이 바뀝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부서는 9.11 테러 이후에 만들어진 국토안보부로 2002년입니다. 완전히 사라진 부서는 1792년에 만들어졌던 체신부로 1971년 준독립기구인 우편국으로 변경됐습니다.
1789년에 시작된 미국 연방정부의 긴 역사를 생각해보면 너무나 간단한 정부 구성의 변화입니다. 대통령 바뀔 때마다 국정 철학을 구현한답시고 정부 부처 바꾸고 공무원들이 바뀐 조직에 따라 이리저리 우루루 몰려다니고, 부서 이름 바꾼다고 온갖 행정 서식과 심지어 교과서까지 바꿔야 하는 이런 불필요한 일들이 이번 대통령을 끝으로 좀 막을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박근혜 대통령이 목을 매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는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명맥을 이어가기 쉽지 않겠다는 불길한 생각을 쉽게 떨쳐내기 어렵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