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최시중 前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 前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습니다. 최 전 위원장은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지만 9개월만에 풀려났고, 징역 2년형의 천 전 회장은 수감생활을 한 기간이 1년도 채 안됩니다. 이미 많은 언론이 이번 사면이 왜 법과 원칙에 맞지 않는지 충분히 지적했습니다. 저 역시 할 말이 참 많습니다만, 모두가 느끼고 계실테니 생략합니다. 대신 이번 기사의 의도와 뒷 이야기들을 좀 풀어볼까 합니다.
@ 얼굴을 감싸 쥔 천신일 전 회장
1월 31일 오전 9시부터 서울구치소 정문에는 수십명의 취재진이 모여들었습니다. 10시 10분쯤 되자 구치소 안에서 차량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곧 구급차 한대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명의 사진기자와 카메라기자들이 차량을 막아섰습니다. 유리가 짙게 코팅되어 있어 차량 내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급차를 운전하시는 분들과 막아선 영상기자들 사이에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찍힌 영상을 자세히 돌려보니 천 전 회장의 모습이 딱 한 컷 담겨있었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누워 있는 장면이 말이지요. 스스로도 떳떳하지는 못하다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얼굴을 감싸쥔 그 장면이 이번 특별사면의 속내를 잘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편집기자의 공들인 보정작업 끝에 해당 장면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느닷없이 한 시민이 구급차에 두부와 천원짜리를 집어던졌습니다. 방송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욕설도 들렸습니다. 이렇게 풀어줄 거면 수사와 재판은 왜 하냐는 내용의 쪽지도 바닥에 뒹굴었습니다. 본인에게 직접 피해를 준 것도 아닐텐데, 꼼꼼히 준비해온 정성이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울화가 치미는 사람들의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을까요. 그 장면 역시 리포트에 담았습니다.
@ 같은 말만 반복하는 최시중 전 위원장
그러는 동안 구급차 뒤로 최시중 전 위원장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여러 기자들이 차량을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리자 최 전 위원장이 차에서 내렸습니다. 작정한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밀지 말라, 포토라인을 만들어라. 시간을 줄테니 서두르지 말라"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둘러섰고,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지자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질문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 심경 한마디 해주시죠.
=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하고 여기있는 9개월 동안 많은 인간적인 성찰과 고민을 했습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국민들께 다가가겠습니다.
- 특혜 사면 논란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 그런 문제에 대해서 내가 언급할 성질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앞으로 계획은요?
= 이제 건강을 좀 추스려야 되고 건강을 추스리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서 생애 남아있는 황혼의 시간을 좀 더 유용하게 보낼 수 있도록 구상을 하겠습니다.
질문이 이어졌지만, 더 이상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차에 탔습니다. 앞서 천 전 회장의 차량에 몰렸던 기자들까지 합세해 수십명의 기자들이 차량을 둘러쌌습니다. 플래시 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차량이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자, 한참만에 최 전 위원장이 다시 차량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다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또 한 번 똑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 건강을 추스리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서 생애 남아있는, 한 오늘 시간을 좀 더 유용하게 보낼 수 있도록 구상을 하겠습니다.
- 사면 결정 과정에서 사전에 들으신 내용이 있으신가요?
= (약간 인상을 쓰며) 사면에 문제는 내가 언급할 성질이 아니라는 걸 이미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눈을 감으며 잠시 침묵) 그리고 저는 그저 국민들에게 많은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드립니다. 정말 국민께 정말 죄송합니다.(목례)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이어지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차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지자 다소 짜증스러운듯 인상도 썼습니다. 그렇게 구치소 앞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를 떴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준비해 온 답변 몇개만을 반복했습니다. 어떻게 답해야 어떤 식의 기사가 나가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최 전 위원장은 기자 출신입니다) 그의 말에서는 어떤 진심도, 책임감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죄송하다고는 하지만 죄송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사람들이 정작 궁금할 특혜사면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습을 리포트에 담았습니다. 1분 30초 리포트에 그 맥락과 의도가 충분히 담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도 한때는 진실을 찾아 헤매던 언론인이었을텐데... 여러모로 궁색해 보였습니다.
@ 황당한 소식…"나는 무죄다"
그렇게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데, 황당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구치소를 나와 병원을 찾은 최 전 위원장이 다른 언론사 기자를 만나서는 무죄를 주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민들께 사죄한다던 사람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무죄를 주장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최 전 위원장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나는 무죄야. 나는 돈을 내 사적으로 받은 바도 없고 내 정책활동의 일환으로써 그 사람들이 도와주기 위해서 한 것이지."
오전에 기자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최 전 위원장은 대체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이었을까요? 인터뷰의 뜻은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가 떳떳하게 풀려난 것이란 말인데. 대체 국민들께 어떤 심려를 끼쳤다는 말인가요. 황당했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아 화도 났습니다.
거리 인터뷰에 나섰습니다. 시민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일반 시민 3명을 인터뷰 하는 동안, 모두 동일하게 "말도 안된다"는 답을 했습니다. 누군들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유독 재임 기간 내내 법과 원칙을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결국, 본인 스스로가 그 원칙과 법과는 상관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수많은 미사여구와 말장난으로 논점을 흐렸습니다. 얼굴을 가리고, 짜증을 내고, 하루도 안돼 말을 바꾼 측근들 역시 마찬가지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에 해명을 짜맞추게 되면 앞뒤가 맞지 않게 마련입니다. 이번 특별사면이 그랬습니다. 법과 원칙, 법 앞의 평등은 허울좋은 구호에 그쳤습니다. 국민 모두가 느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종합해 기사를 마무리 했습니다.
"형기의 3분의 1, 혹은 절반도 채우지 않고 줄줄이 석방되는 두 측근의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정부가 지금껏 강조해온 법과 원칙이 이런 거냐고 반문합니다."
법과 원칙의 의미에 대해 오래도록 곱씹게 된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