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가 들어서는 강정마을의 주민화합과 정신적 상처 치유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절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마을 발전의 계기'라는 찬성측과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반대측이 수년간 충돌하면서 마을 공동체가 무너진 것은 물론 찬성, 반대할 것 없이 주민들이 만성화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1천900여명이 사는 농어촌인 강정마을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한 것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갈라진 마을 = 2007년 4월에 열린 강정어촌계 총회에서 윤태정 마을회장은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가 왔다"며 주민들에게 해군기지를 유치하자고 설득했다.
마을에서는 기지가 들어서면 의료시설이 생기고 도로가 넓어지는 등의 편의와 지역개발을 기대한 주민들이 동의하며 제주도에 유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내 마을은 험악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유치 결정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를 느낀 주민들이 주민총회를 제안했다.
그해 6월 열린 주민총회에는 700여명이 모여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일부가 기표소를 부수고 투표함을 들고 달아나는 소동이 벌어져 무산되고 말았다.
두 달 뒤 열린 마을총회에서는 해군기지 유치 청원서를 제출한 마을회장이 해임됐다.
이어 열린 해군기지 유치 찬반투표에서는 먼저 유치의사를 밝혔던 주민 86명보다 훨씬 많은 680명이 반대했다.
양측의 대립은 끝없이 지속하며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게다가 반대활동을 하다 경찰에 연행·구속되는 사태까지 속출하자 기지를 유치한 주민과 이를 막는 주민 모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떠안게 됐다.
원래 강정마을은 외부에서 유입된 거주자가 적고 몇몇 성씨의 '?당(친척)'으로 얽혀 있는 등 끈끈하고 돈독한 관계였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갑장(동갑)'과 계 모임 등 100여개 주민 모임이 있었다.
그러나 해군기지 때문에 친지 사이도 찬반이 갈려 얼굴을 붉히다가 차례를 따로 지내는 일이 생기는 등 전통적 주민모임도 사라져 갔다.
해마다 강정천에서 열리는 별포제와 수눌음 등의 전통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마을의례회관 밑 사거리에 마주한 두 가게는 찬성·반대로 나뉘어 서로 뜻이 다르면 발길을 끊는다.
이런 상황은 강정마을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가 지난해 7월 찬반 주민 99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대다수인 98%가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마을 주민들 간 관계가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가족·친척 사이에 해군기지 문제로 의견 충돌을 경험한 비율도 절반 이상을 보였다.
◇정신 고통 심각 =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 활동이 거세지면 비상 사이렌 소리가 온 마을에 퍼진다.
마을 포구와 기지 건설지 주변에서는 반대측과 이를 막는 경찰, 해군측과 몸싸움이 어김없이 이어진다.
제주군사기지저지대책위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이후 2012년 4월까지 해군기지 건설 저지 투쟁과정에서 체포·구금된 주민과 활동가들이 연인원 543명에 달했다.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도 고통받기는 당사자들과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강정포구에서는 작은 규모지만 강정마을 화합을 위한 '용왕대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 주민은 "평화로운 마을 공동체가 해군기지 건설문제로 파괴되는 게 외지인에 의해 제주 공동체가 파괴됐던 4·3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공동체가 없어졌는데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두가 힘들 수 밖에 없지 않으냐"며 울먹였다.
특히 주민간 날카로운 대립을 어린이들은 수년간 자연스럽게 지켜봐 온 터라 어른들의 걱정도 더욱 커지고 있다.
이처럼 오랜 갈등 속에 강정마을 주민 대부분은 자포자기, 회피 등 정신적 고통이 내면화, 만성화되는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권의학연구소 조사에서는 주민 38.8%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33.7%는 강박증과 불안증세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비율은 고문피해자 조사에서 나타난 우울증 25.4%, 불안 증세 31.9%보다도 높은 것이다.
다음으로 정신증 29.6%, 신체화 증상 28.6%로 나타났다.
신체화는 억압된 감정이 통증 등 몸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뜻한다.
공포감 25.5%, 적대감 24.5%, 편집증 19.4%, 예민증 19.4%가 뒤를 이었다.
조사 당시 일주일 기간에 자살충돌을 느낀 주민이 31.6%에 달했고 9.1%는 심각한 자살 충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에 해당했다.
또한 남성 응답자의 알코올 의존도가 33.3%로 높게 나타났으며, 이중 17.1%는 해군기지 문제 이후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됐거나 원래 술을 마시지 않았다가 마시게 됐다고 답했다.
이화여대 대학원 이보라씨는 '제주도 내 군사기지 유치 담론을 통해 본 평화정치학'이란 논문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마을은 삶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서 기지 건설로 파괴되는 마을의 질서가 피부로 느끼지는 '폭력'처럼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치유책 시급 = 현재 강정마을에서는 정부와 공권력의 신뢰가 크게 떨어져 있다.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봤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태다.
그래서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은 반대운동 과정에서 구속된 이들의 빠른 석방으로 정부가 먼저 갈등을 풀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현재 2명의 활동가가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다가 구속돼 있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과 양윤모 영화평론가도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강정 주민들은 찬반을 떠나 어서 마을이 안정을 되찾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다.
인권의학연구소 임채도 연구기획실장은 "주민들의 고통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주민간 불안, 경찰의 개입 등으로 인한 사태 악화로 나타났다"며 "정부와 주민 간의 대화 재개가 시급하고 공개적인 토론과 객관적인 타당성 조사에 기반을 둔 해결책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관심과 노력도 세심해야 한다.
마을 발전 계획 등 물질적 보상도 중요하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의 공동체 복원과 정신적 치유 프로그램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도내 복수 시민단체 관계자는 "국가폭력에 의해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제주4·3 피해자 유족에 대한 치유센터 건립과 연계해 강정마을 주민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