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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택시 승차거부, 그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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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출입처를 같이 나가는 선배들과 시내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희 방송기자는 대개 ‘8시 뉴스’를 마치고 퇴근하다 보니, 저녁 식사지만 대개 밤 9시를 넘겨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날도 그렇게 다소 늦은(?) 시간에 만나 회포를 풀다 보니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졌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당을 나섰는데,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있어야 할 택시는 온 데 간 데 없고, 그 자리를 승객들이 메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시간 넘게 택시를 잡으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택시들은 야속하게도 저를 피해 갔습니다. 결국,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바람을 맞으며 1시간 넘게 걷고, 걷고 또 걸어 간신히 택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래, 맞아~ 맞아~나도 그런 적 있어” 하며 공감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특히, 요즘처럼 각종 모임과 술자리가 많은 연말에는 밤에 택시 잡기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서울은 홍대입구, 강남역, 종로, 신촌과 같이 음식점과 술집이 몰려 있는 지역이 특히 심각합니다. 그렇다 보니 ‘홍대 대첩’, ‘강남 대첩’ 같은 신조어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매일 밤 도심 곳곳에서 택시와 승객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궁금했습니다. ‘기자’가 아닌 ‘시민’으로서 궁금했습니다. ‘왜 이렇게 택시를 잡기가 어렵지?’ 마치 밤만 되면 모든 택시기사가 저를 골탕먹이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제가 출입하고 있는 서울시는 해마다 승차거부 단속과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심지어 공무원들이 택시를 대신 잡아주는 방안까지 마련했는데, 왜 이 ‘택시와의 전쟁’은 반복될까요? 담당 공무원과 택시기사, 전문가 그리고 일반 시민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밤이 되면 우리도 퇴근해야죠.”

택시 승차거부가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밤이면 택시를 타려는 승객은 많아지는 반면, 운행하는 택시 수는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밤에는 운행하는 택시가 줄어들까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택시기사들도 엄연한 ‘생활인’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침에 출근해서 밤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것처럼, 택시기사들도 이런 근무방식을 선호합니다. 특히, 하루 2교대 하는 법인택시보다는 자영업자인 개인택시기사들이 이렇게 ‘아침-저녁 근무 일정’에 맞춰 택시를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밤 9시가 넘기 시작하면 운행을 접고 집으로 퇴근하는 택시기사가 늘어나는데, 이렇게 ‘퇴근하는 택시’가 서울에서만 하루 평균 천여 대에 이릅니다. 승객은 급격히 늘어나는데 운행하는 택시는 오히려 줄어드니, 택시 잡기가 당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술 취한 취객들이 시비를 걸고, 짜증 나게 하면 힘들잖아요!‘

하지만, 고질적인 ‘승차거부 현상’을 단순히 ‘운행하는 택시 수가 부족하다’라는 이유로 다 설명할 순 없습니다. 분명히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어느 택시기사는 제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밤에 운전하면 차도 안 막히고, 운전하기도 더 편하고 장점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밤에는 술 취한 사람이 택시 많이 타잖아요. 그런 취객들이 괜히 시비 걸고, 주정 부려서 짜증 나게 하고, 돈 안 주고. 그런 게 싫어서 일찍 들어가는 거예요. 또, 개인택시운전사들은 그래도 오래 운전해서 나이가 제법 있는데, 나이 들어서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잖아요.” 한마디로 술에 취한 승객들을 보는 게 싫어서,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해서 야간운행을 꺼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건 제 경험에 비춰 봐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제가 수습기자로 경찰서를 취재할 때 보면,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경찰서 형사과로 들어오는 사건의 상당수는 ‘택시기사 폭행’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택시기사 폭행사건’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오죽했으면, 수습기자의 보고를 받는 선배들은 ‘택시기사 폭행’은 아예 보고조차 하지 말라고 할 정도입니다. 결국, 택시기사들은 취객들을 태워야 하는 밤보다 낮에 운전하는 걸 선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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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벌어야 하는데 빈차로 돌아와야 하잖아요!”

하지만, 승객 처지에서 보면 운행하는 택시 수가 줄어 택시를 잡기 어려운 것’보다 ‘택시가 나를 태우지 않고 그냥 가는 것’이 더 기분 나쁜 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야간취재를 나가보니, 창문을 내리고 승객에게 목적지가 어딘지를 확인한 뒤에 승객을 골라 태우는 경우를 매우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방향이 반대'라든지, ‘퇴근길이라서 못 태운다’고 손님에게 양해라도 구하면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목적지를 말하면 그냥 지나치거나, 아예 서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렇다 보니, 차도 중앙까지 나가서 택시를 잡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곳곳에서 발생했습니다.

승객 입장에선 당연히 불만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정당하게 내 돈 내고 탄다는데, 왜 눈치를 보고, 거부당해야 하느냐?”,  “택시기사들은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달라고 주장할 자격도 없다. 어느 세상에 대중이 승객 가려서 태우나? 버스나 지하철이 승객 가려서 태운다는 게 상상이나 되나?” 승차거부 당한 승객들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합니다. 결국, 이런 승객과 택시기사 간의 실랑이는 몸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택시기사들은 또 그 나름의 입장이 있습니다. “낮엔 택시가 남아돌아서 돈 벌기가 어렵다. 그나마 손님들 있는 밤에 바짝 벌어야 하는데, 서울 도심에서 일산, 도봉, 성남 같이 멀리 가버리면 시내로 들어올 때 빈차로 와야 한다. 그렇게 멀리 가면 기름값도 많이 들고 또 한 번 나가면 몇 시간이 날아가는데, 그만큼 돈이 안 된다. 그러면 정말 사납금 맞추기도 어렵다.” 어느 한 쪽의 입장만 편들기 어려운, 불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심야전용택시’ 대안, 과연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해마다 택시 승차거부 대책을 내놓는 서울시가 올해도 새로운 대안 발표했습니다. 밤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만 운행하는 ‘심야전용택시’를 도입하겠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 야간에 부족해진 택시공급을 늘려서 ‘승차거부 현상’을 없애겠다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까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입니다. 우선, 서울시의 판단으로는 실제로 승차거부를 줄이기 위해선 약 8천 대의 택시를 야간에 투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심야전용택시’를 하겠다고 지원한 개인택시 기사는 고작 천4백여 명에 불과합니다. 산술적으로 승차거부 해소에 필요한 택시공급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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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들 ‘심야전용택시’를 홍대입구나 강남역, 종로 같은 심야 혼잡지역으로 운행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만난 ‘심야전용택시 지원 기사들은 야간에 심야 혼잡지역에 들어갈 의사가 별로 없다고 했습니다. 지원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낮 동안 다른 일을 좀 하고, 여유가 되면 밤에 택시를 하기 위해 이른바 ‘투 잡(Two-job)’을 하기 위해서, 혹은 밤에 차가 안 막혀 운전하기 편해서란 답이 많았습니다. 결국, 전문가들은 서울시의 대책이 ‘의도 자체는 좋지만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택시기사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제도 도입해야”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시간대별 할증제도를 도입해 늦은 시간대 택시요금을 인상하는 겁니다. 또 거리별 할증제도를 도입해서, 일정 구간 이상을 벗어나면 요금을 더 내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택시기사들도 그만큼의 보상을 받으니 승차거부를 하지 않겠죠. 택시기사들은 이 방법을 가장 바랄지 모르겠지만, 모든 부담을 승객에게 직접적으로 전가한다는 점에서 결코 좋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택시기사들이 취객같이 힘든 승객도, 도심을 벗어나 멀리 가는 승객도 기꺼이 태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예를 들면 ‘승차거부 없는 택시’ 인증 제도를 도입해서 심야 혼잡지역에서 승차거부를 하지 않는 택시에는 기름값 할인쿠폰을 준다든지 혹은 부제를 자유롭게 풀어준다든지, 이렇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동시에 심야 혼잡지역에 ‘승차거부 없는 택시’ 인증을 받은 택시가 정차하는 택시정류소를 만들어두면, 승객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모여서 수요와 공급이 절충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고도 조언합니다. 결국, 무조건 단속하거나 강하게 처벌하기보단 택시기사들이 자발적으로 승차거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명분과 혜택을 주는 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택시 승차거부는 이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문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시민은 택시기사들이 승객을 우습게 알고, 큰 불편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택시기사들은 ‘어쩔 수 없는 생존권의 문제’라고 항변합니다. 이 둘 사이에는 넓고 깊은 ‘격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어느 전문가는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 이 문제의 비극은 거기에 있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시민과 택시업계 그리고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고 고민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격류’를 안전하고 슬기롭게 건너갈 수 있는 현명한 영법(泳法)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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