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갈등을 겪던 예식장 전 사장이 채권자 2명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사건은 마치 느와르(noir) 영화를 연상케 한다.
'느와르'는 프랑스어로 '검다'는 뜻으로 범죄·폭력의 세계를 다룬 영화 장르를 말한다.
다크 필름(dark film)이라고도 한다.
이번 사건에는 채무, 린치, 복수, 납치, 조직폭력배, 자살, 유서 등 느와르 영화에서 자주 쓰는 소재가 무수히 등장한다.
전주지법과 경찰에 따르면 자살한 전주 모 예식장 사장 고 모(45)씨는 4월 조직폭력배와 아들을 시켜 채권자 정 모(55), 윤 모(44)씨 등 2명을 납치하기로 결심했다.
친하게 지냈던 이들의 관계는 고 씨의 예식장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금이 갔다.
고 씨는 정 씨 등으로부터 10억 원의 빚을 갚으라며 두 차례 납치, 폭행을 당하는 등 수시로 협박에 시달렸다.
고 씨는 오랜 고심끝에 결국 '채권자 납치·감금'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4월 말 아들(20)과 조직폭력배 등을 동원해 납치한 채권자들을 전자충격기로 쓰러뜨린 뒤 냉동탑차에 싣고 다녔다.
이즈음 고사장 등에 대한 실종신고가 경찰에 접수됐지만 이들의 행방은 한동안 묘연한 상태였다.
납치된 채권자들과 고 씨 모두 사건 발생 13일째인 5월 초 완주군 상관면 국도 갓길에 세워진 1t 냉동탑차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탑차 운전석에는 고 씨가 불을 붙인 것으로 추정되는 번개탄이 발견됐고, 화물칸에는 채권자들이 손발이 묶인 채 숨져 있었다.
운전석에는 '채권자 두 명을 먼저 보내고 뒤따라 (나도) 생을 마감하겠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편지에는 정 씨 등의 부당한 금전 요구에 극심한 고통을 받은 사실이 적혀 있었다.
얼마나 압박에 시달렸는지 고 씨는 자신이 죽인 채권자들을 '악마'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채권자 가족과 지인들은 "고 씨 때문에 빚을 지게 됐다"며 오히려 '악마'는 고 씨라며 반발했다.
사건 초기 경찰은 고 씨의 유서를 토대로 고 씨가 정 씨 등의 폭력과 협박에 앙심을 품고 혼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탑차 안에서 고 씨 아들의 지문을 찾았고, 고 씨와 사건 첫날 통화했던 조직폭력배가 초기 범행에 이용된 렌터카를 빌린 사실을 밝혀내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결국, 채권자들을 납치한 고 씨 아들과 조직폭력배 등 6명은 체포됐고 28일 징역형 등을 선고받았다.
납치 일당의 선고를 맡은 전주지법 제1형사부 이영훈 부장판사는 "대형 예식장 사장이었던 고 씨가 빚 독촉을 하던 피해자들에게 심하게 폭행당하자 앙갚음하기 위해 피고인들을 동원해 피해자들을 납치·감금했다"면서 "채무자들은 노끈으로 결박되고 테이프로 입이 막힌 채 냉동탑차에 실려 다니다가 시체로 발견됐고, 망인도 자살로 추정되는 시체로 발견되는 등 끔찍한 결과가 초래됐다"고 사건을 정리했다.
(전주=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