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독도, 1950년대부터 민간 아닌 경찰이 경비"

울릉경찰서 독도순라반 최헌식 씨 '헤쿠라호 사건' 증언


구글에서 SBS뉴스 즐겨찾기 추가
대표 이미지 영역 - SBS 뉴스

"1950년대 초반 독도로 작업 나간 어민들이 일본 순시선에 의해 쫓겨났다는 신고가 한 달에 한 번 꼴로 들어왔습니다. 조업 중인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이 수시로 직접 독도에 나갔습니다."

7일 울릉도에서 만난 최헌식(89) 씨는 고령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옛 기억을 풀어나갔다.

당시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순라반의 반장(경사)이었던 최 씨는 "순라반이 독도에 접근한 일본의 순시선 헤쿠라호를 위협하며 쫓아냈다"며 "배 안에서 일본인 선장과 담판 지을 때 나눈 얘기, 앉은 자리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른바 '헤쿠라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한국전쟁으로 혼란한 시기였던 1950년대 초반에도 정부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 씨의 증언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가 1953년 4월 창설돼 3년8개월간 독도에 상주했다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 동안 정부와 경상북도, 울릉군 등은 독도의용수비대장 고(故) 홍순칠씨의 수기를 근거로 의용수비대가 헤쿠라호를 격퇴했다고 공식 인정해왔다.

그러나 외무부가 1955년 발간한 '독도문제개론'은 독도순라반이 헤쿠라호를 물리친 것으로 기록돼 있어 의용수비대의 활동 내용과 기간이 과장됐다는 논란이 지속돼왔다.

최 씨는 "당시 일본은 수시로 '시마네현 다케시마'라고 적힌 말뚝을 박아놓고 가거나 시마네현 명의로 '이곳에서 무단 채취를 금한다'는 내용의 표지판을 세웠다"며 "말뚝을 뽑아놓으면 또 심어놓고 가는 등 기 싸움이 치열했다"고 회고했다.

1953년 7월12일 최 씨는 일본이 또 표지판을 세웠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당시 김진성 순찰주임(경위), 최용득 순경과 함께 독도로 향했다.

독도에 관심을 가진 초등학교 교사 2명도 연구차 동행했다.

광고
광고 영역

'통통통' 소리를 내며 달렸다는 4.5t 목선은 독도까지 기상이 좋을 때는 7시간, 파도가 거셀 때는 8∼9시간이 걸렸다.

최 씨는 "약 200m 앞바다에 우리 배의 100배 크기(450t급)의 일본 배가 있었다"며 "안에 들어가 보니 자신을 일본 보안청장이라 소개하는 사람이 기자 20여 명까지 대동하고 왔다"고 회고했다.

최 씨는 당시 "조선시대에 안용복이 일본까지 가서 일본 정부로부터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각서를 받아왔다"며 "울릉도 능선에만 올라가도 독도가 보이는데, 대나무 하나 없는 섬에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이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이에 일본 선장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보였다.

한참 승강이를 벌이던 중 밖에서 기다리던 김 주임이 배에 올라 고함을 치며 헤쿠라호를 영해 침범혐의로 나포한다고 말했다.

배가 달아나려 하자 기다리던 순경들이 M1 소총으로 위협사격했다고 최 씨는 전했다.

지금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 대해 최 씨는 "어불성설"이라며 "예나 지금이나 독도는 우리 경찰력이 미쳤던 우리 땅"이라고 강조했다.

(울릉도=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