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에 본사를 두고 있는 T건설은 2010년 인천 모 병원의 증축과 리모델링 공사를 수주해 발주처인 병원의 요구로 여러 차례 설계변경을 했으나 올해 초 준공 후 7개월이 넘도록 설계변경 금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설계변경 당시 개원 일정이 촉박해 준공 후에 공사비를 정산하기로 하고 변경안대로 공사를 진행했으나 발주자인 병원이 준공 후 '기능상 필요한 공사'였다는 이유로 공사비를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민간 건설공사 현장에서 도급자가 일방적으로 공사비를 받지 못해 피해를 보는 일이 앞으로는 줄어들게 될 전망이다.
발주자가 공사비를 주지 않으면 손해배상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표준계약서 사용도 적극 권장된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이재 의원은 지난 5일 국토해양부 국정감사에 지적한 민간 건설공사의 불공정 계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달중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22일 밝혔다.
이 의원은 법 개정을 위해 최근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와 개정안에 대한 사전조율도 마쳤다.
이 의원은 개정안에서 민간 발주자가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발생하는 수급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급인이 발주자에게 공사대금지급보증 또는 담보제공청구권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민간 건설공사는 공공공사와 달리 공사대금 지급 보증 제도가 운영되지 않아 공사비를 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발주자가 수급인의 공사대금지급보증이나 담보 제공 요구에 따르지 않을 경우 수급인이 일정한 기간을 정해 발주자에게 그 이행을 최고(독촉)하고 공사 시공을 중지할 수 있다.
발주자가 최고한 기간내에 이행을 하지 않으면 수급인은 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이 경우 발주자는 수급인에게 공사 중지나 도급계약 해지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대한건설협회가 전국의 종합건설업체 25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건축주(발주자)로부터 공사대금을 전부 또는 일부 받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39.4%(100개사)를 차지했고, 추가공사나 설계변경시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는 응답자는 52%(132개사)에 달했다.
이 의원은 "전체 민간건설공사 수주액이 74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수급인들은 총 5조 6천억 원 상당의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고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며 "손해배상 없이 계약해지 권한을 부여해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또 민간 건설공사의 공정한 계약 체결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건설공사표준하도급 계약서 사용을 권장하고 표준계약서 사용시 상생협력 평가에서 벌점을 경감해주는 등의 제도적 인센티브를 마련하기로 했다.
건산연 설문조사에서 응답 건설사의 45.3%(115개사)가 표준도급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변경해서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표준계약서 사용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불공정특약 규정을 무효화하는 조항도 신설한다.
도급 계약서의 내용중 계약체결 이후 설계변경이나 계약금액 변경을 상당한 이유없이 인정하지 않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경우 등 6가지 조항에 대해서는 불공정 특약으로 보고 계약 내용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중앙건설분쟁 조정위원회의 운영을 내실화하기 위해 위원회 내 사무국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조정위원회의 효력을 재판상 화해와 동일하게 부여하는 방안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이 의원실은 개정 내용을 새누리당의 대선공약인 경제민주화 내용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음달 12일에는 국회도서관에서 '민간건설공사의 대금지급 및 공정성 확보 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도 개최한다.
이 의원은 "하도급 대금 지급 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는 공공공사와 달리 민간 건설공사는 사적 계약이라는 이유로 보장장치가 미흡해 건설사와 하도급 전문업체, 건설근로자 등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건설경제 민주화를 위해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개정 내용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국토부 박민우 건설정책관은 "민간 건설공사의 경우 사적계약이지만 불공정 거래에 대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며 "민법 등 다른 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공공공사의 수급인 보호제도를 민간 공사에도 최대한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