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를 다섯 달 앞두고 북한과 합의한 '10·4선언'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참여 정부는 북한과 2007년 8월28∼30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지만 평양에 내린 폭우와 이로 인한 수해로 한 차례 연기 끝에 10월 2∼4일 회담을 했다.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불거지고 2006년 10월에는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하는 등 북미관계 악화 속에 남북관계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2007년 6자 회담 2·13합의와 10·3합의로 북미관계가 호전되는 등 국제관계 변화 속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었다.
회담 마지막 날인 10월4일 합의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은 정전협정 당사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종전선언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사업, 국방장관회담 개최 등 한반도 평화보장을 위한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조치를 도출했다.
또 개성-신의주 철도연결사업과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안변 및 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사업,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착수 등 경제협력 사업에 합의했다.
이외에 백두산 관광 등 역사, 언어, 교육 등 사회문화교류 확대에도 합의했고 이산가족 상봉 확대와 자연재해 발생 시 협력 등 인도적 협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10·4선언은 남한 정부 임기 말에 이뤄진 남북간 합의인 데다 새로운 내용의 각종 남북 경제협력사업에 따른 적잖은 재정 부담이 요구돼 처음부터 논란이 됐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안상수 원내대표는 주요당직자 회의와 의총에서 "북한은 별로 주는 게 없는데 대한민국은 북한에 엄청나게 지원해 준다는 느낌이다. 대한민국이 얻은 것은 추상적 선언 몇 개에 불과하고 북한에는 경협을 위장해 엄청나게 많은 퍼주기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회에서는 광범위한 합의를 했던 10·4선언에 대해 동의절차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하면서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말았다.
이후 정권교체가 이뤄져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대북정책에서 선핵포기를 내세우면서 10·4선언은 이행과정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사실상 휴짓조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5년이 지나 대선을 목전에 둔 지금 10·4선언에 대한 정치권의 태도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현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뒷받침해온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선 후보는 지난 7월 강원도 철원 DMZ 생태평화공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역대 정권의 7·4 남북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은 기본적으로 다 지켜져야 한다"면서 "그것도 못 지키면서 새로운 약속을 해서 신뢰를 쌓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합의의 기본 정신은 상호 존중이 아니겠느냐"며 "10·4선언 같은 경우는 이행에 있어 재정이 많이 소요되고 국회 동의도 받아야 하고 민간이 할 일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합의한 걸 지킨다는 틀은 우리가 하지만 세부적인 것은 여러 가지 동의도 받고 조정해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07년 정상회담 당시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25일 도라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저의 대북정책은 '평화가 곧 경제'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며 "남북 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공동선언에 담긴 남북경제협력 구상을 발전시켜 '남북경제연합'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도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에서 "단기적으로 중단됐던 남북대화와 경제협력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며 "금강산, 개성관광 등을 다시 시작하고 개성공단은 확대하며 개성공단과 같은 협력모델을 다른 지역에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혀 대체적으로 10·4선언의 합의를 존중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도 3일 논설에서 "우리 겨레가 평화번영의 길로 나아가자면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4선언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며 "남조선에서 우리를 적대시하는 대결정책이 연북화해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10·4선언의 합의 내용은 남북 간에 협력할 수 있는 사업을 대부분 망라하고 있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정부에서는 10·4선언의 합의 내용을 재검토하고 그 결과 위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