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와 증권 유관기관 임직원의 차명계좌를 통한 주식거래는 금융실명제법과 자본시장법을 동시에 위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빈번한 것은 '한탕', '대박'을 노리며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급정보에 접근할 자리에 있는 경우 이런 유혹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증권사와 유관기관이 나름대로 내부통제규정을 마련해놓고 임직원을 단속하지만 한계가 있어 보인다.
금융감독원과 감사원 적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외부 조사가 들어올 때까지 증권사들은 직원들의 부정행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의 더욱 철저한 관리감독과 함께 시장을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증권사 규정 통해 내부통제…실효성 '부족'
24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사와 유관기관들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임직원의 금융투자상품 거래를 제한하는 내부통제규정을 마련해 두고 있다.
자본시장법은 증권사 직원의 경우 자기 회사에 본인 명의로 한 개의 계좌를 만들어 주식 등을 거래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분기마다 내부 준법감시인에게 매매내용을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그 외 구체적인 사항은 각 증권사가 내부통제규정으로 규정한다.
대부분 증권사는 리서치센터나 투자ㆍ영업 관련 부서 직원의 주식거래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또 투기 위험성이 큰 선물ㆍ옵션거래, 신용ㆍ미수거래, 주식워런트증권(ELW) 거래, 거래소가 지정한 투자경고ㆍ위험종목 거래 등을 금지하는 증권사가 많다.
주식거래가 허용되더라도 투자 횟수나 금액에 제약을 두는 곳도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주식회전율(상장주식수에 대한 거래량의 비율)이 월별로 1천50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월 주문횟수도 500건으로 제한했다.
현대증권도 월 회전율이 1천500%를 초과할 수 없다.
한국투자증권은 직위별로 연간 투자한도를 4천만 원∼1억 2천만 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런 내부통제규정은 금융당국에도 존재한다.
금융감독원은 내부규정으로 투자금액을 연봉의 50%로 제한하고 매매횟수를 분기별로 10차례 이내로 한정했다.
선물ㆍ옵션거래는 금지된다.
금융투자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분기 보고 외에 별도로 1년에 3~4차례씩 점검한다.
그러나 이런 규제에도 차명계좌를 통해 비밀리에 금융투자상품을 거래하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끊이지 않고 있어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고급정보가 집중되는 금융위원회 직원에 대해 규제가 허술한 것도 문제점으로 보인다.
특히 자본시장의 모든 정책과 규제를 담당하는 자본시장국 직원조차 규제 상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4급 이상 직원은 공직자재산공개에 따라 가족까지 재산이 공개되니 통제가 되는데 5급 이하는 자본시장법상 규제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며 "지금처럼 그대로 둘지는 고민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자체 제한규정을 두는 것은 업무 특성상 중요하고 민감한 투자정보에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큼 오해나 문제가 될만한 소지를 미리 차단하자는 게 그 목적이 있다.
◇ "도덕적 해이에 대해 감독ㆍ처벌 강화해야"
증권사들이 내부통제규정을 통해 나름대로 임직원을 단속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부족한 만큼 관리감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증권사 직원이 다른 증권사에 차명계좌를 열고 몰래 주식거래를 해도 내부적으로 솔직히 보고하지 않는 한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규정이 형식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이나 감사원 적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외부 조사가 시작될 때까지 증권사들은 자기 직원이 몰래 수백 차례의 주식거래를 했는데도 아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균 책임연구원은 "금융권 직원들의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는 아직 통제장치가 충분히 발달돼 있는 것 같지 않다"며 "금융권 임직원들에 대한 도덕성 규율은 강화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한기 국장은 "거래를 아예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측면이 있지만 최근 각종 비리, 부정행위가 발생하는 것은 그만큼 금융당국 감시가 충분하지 않다는 증거일 수 있다"며 관리감독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감원은 증권사 임직원의 차명계좌를 이용한 주식거래 등은 계속 관리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기 회사보다는 다른 증권사에서 주식거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매매주문 기록이 남고 특정 IP가 나올 경우 적발이 된다"며 "증권사 직원의 차명계좌를 이용한 부정 주식거래는 관리감독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규제, 감독보다는 시장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김갑래 연구위원은 "자꾸 규제만 늘리고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지 않으면 규제에 대한 불신을 느낄 수 있다"며 "강력한 처벌로 다시 시장에 진입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