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최고 지도부 진입을 노리던 유력 정치인 일가를 몰락시켜 중국 정가에 메가톤급 풍파를 일으킨 '보시라이 스캔들'의 전모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보시라이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 재판에 이어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의 재판이 열리면서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사건의 진상이 상세히 공개된 것이다.
관영 신화통신은 19일 보시라이가 아내의 살인 사건을 은폐했고, 미국 정부의 부인과 달리 왕리쥔이 미국 총영사관에서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신화통신이 보도한 사건의 전말을 정리한 것이다.
◇ "학이 서쪽으로 날아갔다"…영국인 피살 사건 은폐 = 구카이라이는 작년 11월 13일 충칭시의 한 호텔에서 경제적 문제로 마찰을 빚던 영국인 닐 헤이우드를 독살했다.
구카이라이는 그날 밤 자정께 왕리쥔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닐 헤이우드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다음날 구카이라이는 자택에 찾아온 왕리쥔에게 자신이 닐 헤이우드를 독살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사건 은폐를 부탁했다.
왕리쥔은 "한두 주만 지나면 모두 괜찮아질 것"이라면서 구카이라이를 안심시켰다. 그러면서도 왕리쥔은 구카이라이와의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놓았다.
11월 15일 호텔 객실에서 닐 헤이우드의 시신이 발견됐고 충칭시 공안이 수사에 나섰다.
왕리쥔은 현장의 공안들을 철수시킨 뒤 자신의 심복인 궈웨이궈(郭衛國) 전 충칭시 공안부국장에게 사건 내막을 설명하고 나서 수사를 책임지게 했다.
현장 수사에는 왕리쥔의 심복인 왕펑페이(王鵬飛) 전 충칭시 공안국 기술수사총대장, 리양(李陽) 전 충칭시 형사경찰총대장, 왕즈(王智) 전 충칭시 공안국 사핑바(沙坪패<土+貝>분국 부국장도 참여했다.
'사전 각본'에 따라 이들은 닐 헤이우드의 사인을 알코올 중독사로 정리하고 서둘러 시신을 화장했다.
닐 헤이우드의 시신이 화장된 11월 18일 왕리쥔은 구카이라이에게 전화를 걸어 "푸른 연기가 나고 학은 서쪽으로 날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왕리쥔과 그의 부하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구카이라이 몰래 닐 헤이우드의 혈액과 토사물, 호텔 CCTV 화면 등 중요 자료들을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 보시라이 일가의 갈등서 망명 기도까지 = 닐 헤이우드 사건을 은폐한 후 구카이라이와 왕리쥔 사이에는 긴장감이 형성됐다.
구카이라이는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는 왕리쥔이 부담스러웠다.
이런 가운데 작년 12월 14일 구카이라이는 왕리쥔만 뺀 왕펑페이, 리양, 왕즈를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사건을 은폐해 준 것에 감사를 표시하는 자리였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왕리쥔은 수하들 앞에서 불같이 화를 냈고, 이 소식이 구카이라이에게 다시 전해지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크게 금이 갔다.
그해 12월 말 구카이라이 측은 왕리쥔의 심복 4명을 불법으로 체포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왕리쥔은 이를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왕리쥔은 올해 1월 28일 충칭시 공산당위원회의 '주요 책임자'를 찾아가 구카이라이 독살 사건의 진상을 보고했다.
신화통신은 '주요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적시하지 않았으나 이는 당시 충칭시 당서기였던 보시라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다음날 오전 보시라이는 왕리쥔을 불러 크게 화를 내며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뺨을 때렸다.
당시 현장에 있던 궈웨이궈는 "(보시라이가) 왕리쥔을 때림으로써 갈등이 공개화됐다"고 말했다.
왕리쥔은 즉각 왕펑페이, 리양, 왕즈 등 심복들에게 구카이라이 독살 사건의 증거를 모아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이들 셋에게 구카이라이와의 대화 녹음 자료, 닐 헤이우드의 혈액 샘플 등 주요 증거를 나눠주며 은밀한 곳에 보관할 것을 지시했다.
며칠 뒤인 2월 2일 보시라이는 왕리쥔을 전격적으로 공안국장직에서 해임했다. 왕리쥔의 또 다른 부하 3명도 어디론가 끌려갔다.
보시라이와 전면적인 갈등에 빠진 왕리쥔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2월 6일 회의 참석을 핑계로 대고 청두시의 미국 총영사관으로 도주했다.
왕리쥔은 미국 총영사관에서 닐 헤이우드 살인 사건 수사로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보호를 요청했다. 그는 또한 서면으로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신화통신은 그러나 왕리쥔이 '충칭시와 중앙 유관 기관'의 설득과 권유에 따라 스스로 미국 총영사관을 나왔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정부는 당시 왕리쥔이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적이 없었다고 밝힌 바 있어 향후 미국 안에서 논란이 일 전망이다.
(베이징=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