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의 규모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기업에 자금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시가 여전히 몇몇 대기업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데다 증시의 진입 장벽이 중소기업에 여전히 높다 보니 돈을 구하기 위해 은행을 찾는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증시가 자금조달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되찾으려면 기업의 투명성과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것은 물론 투자위험을 감수하려는 금융투자사들의 적극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 증시는 덩치만 큰 '초등학생'"
올해 상반기 국내 기업의 IPO와 유상증자 실적은 9천14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6.3% 줄었다.
상반기 기준으로는 2000년 이후 최저액수다.
이에 따라 시가총액(6월말 기준) 대비 주식조달금액(IPO+유상증자) 비율도 0.05%로 떨어졌다.
이 비율은 시총 상위권에 포진한 주요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다.
그만큼 한국 증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기존 상장사의 주식만 투자자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는 셈이다.
경제발전 초기의 저소득 국가에서는 은행이 실물경제에 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성숙기에 접어들수록 자본시장의 몫이 커진다는 게 일반적 학설이다.
올해 하반기 역시 글로벌 경기 둔화와 대선 등이 맞물리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져 IPO나 유상증자는 회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해 말에는 이 비율이 0.39%로 올해 상반기보다 꽤 높았지만 호주(4.23%), 홍콩(2.79%), 미국(0.94%) 보다 낮고 은행중심 금융구조라는 일본(0.55%)에 비해서도 여전히 뒤처졌다.
한국 증시가 시가총액으로만 보면 세계 10위권 안팎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물경제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돈 필요하면 은행으로 간다
한국 증시가 자금 공급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기업들이 은행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은행 자금은 담보만 있으면 바로 구할 수 있어서 절차가 매우 간편하다"며 "IPO나 유상증자는 이에 비해 상당히 절차가 복잡해 기업이 당연히 은행을 찾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의 은행 편중 구조는 자산규모만 봐도 드러난다.
지난해 말 은행업의 총자산 규모는 1천969조원으로 보험업(566조원)의 3.5배, 금융투자업(240조원)의 8.2배, 여신전문업(159조원)의 12.4배에 달한다.
한국 증시가 재벌 위주인 것도 IPO나 유상증자가 활발하지 못한 원인증 하나로 꼽힌다.
재벌은 지분을 분산하지 않으려는 속성 탓에 기존 상장사 외에 새로 계열사의 IPO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중소기업은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IPO보다 은행을 찾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말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주식이나 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는 응답은 1.1%였던데 비해 은행대출과 은행을 통한 정책자금은 93.9%로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지난해 말 기준 간접금융 분야에서 중소기업의 대출잔액은 441조원으로 대기업(115조원)의 3.8배나 됐다.
반면 직접금융(주식.회사채 등)에서 중소기업은 2조5천억원을 조달하는 데 그쳤지만 대기업은 72조2천억원이었다.
◇시장 신뢰·투명성 쌓아야 증시 제역할
증시가 실물경제에 자금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핏줄' 역할을 하려면 시장이 성숙돼 투자자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아울러 증권사들도 과감하게 리스크를 무릅쓰는 자세로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KDB대우증권의 한 임원은 "투자자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장에 대한 신뢰가 형성돼야 하고 회계 투명성도 지금보다 높아져야 한다"며 "증권사는 수수료 위주로 수입을 쉽게 얻으려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회사라면 기업을 성장시키고 그 과실을 나눠 먹겠다는 중장기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증권사의 위험인수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형화를 유도하는 정책도 필요하다"면서 "은행에 편중된 금융권역간 불균형을 바로잡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