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보건복지부 차관입니다. 병원 주거래은행을 A은행으로 바꾸세요"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 달 전 경남 창원 소재 파티마병원장은 이 같은 내용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처음엔 복지부 차관이 병원 업무 때문에 연락한 것으로 여겼던 수녀 병원장은 뜬금없는 주거래 은행 얘기를 듣고는 이상하다 싶어 경찰에 신고했다.
2주전에는 이동익 신부도 똑같은 전화를 받았다.
이 신부는 가톨릭 의대 및 간호대와 서울성모병원 등 8개 병원을 총괄하는 카톨릭중앙의료원장이다.
이 신부는 통화 후 친분이 있는 복지부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관계를 문의했고, 예상대로 `가짜 차관'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복지부는 이런 소동이 단순한 장난 전화가 아니라 나름대로 손건익 복지부 차관의 이력 등을 면밀히 파악한 의도적 사칭 행위로 보고 있다.
손 차관이 세례명 '미카엘'의 천주교인이라는 점을 악용, 주로 가톨릭 계열 의료기관 인사들에게 접근해 압력성 민원을 시도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범인을 잡는다해도 현행법상으로는 공무원자격사칭죄를 적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형법 제118조에 따르면 공무원자격사칭죄가 성립하려면 사칭 뿐 아니라 '직권 행사'의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주거래 은행을 바꾸라'는 강요는 복지부 차관의 권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사칭죄를 물을 수 없다.
기껏해야 경범죄자로서 벌금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을 가할 수 있을 뿐이다.
복지부가 정말 걱정하는 것은 처벌 수위보다는 만일에 있을지 모를 추가 피해다.
이미 복지부는 대한병원협회 등에 차관 사칭 주의를 당부하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냈고, 사칭범이 언급한 해당 은행에도 공문을 보내 진상 파악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알려지지 않은 실제 사칭 피해 사례가 더 있을지 모른다"며 "비슷한 일을 겪을 경우 복지부 감사관실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