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로 휘청였던 새누리당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온하다. 서로 말 꺼내봐야 상처만 남아서인지 당 지도부도, 부결 사태를 주도했던 쇄신파도 다들 조용하다.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라고 검찰이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야당 압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때 그렇게 난리쳤으니 야당 원내대표도 당당히 나가 검찰 수사 받으라며 연일 목청을 높이고 있다. 수세에서 공세로 돌아선 셈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큰 흐름에서 보자면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 때 새누리당에서 벌어진 일들 가운데 찬찬히 복기를 해보면 재미있는 것들도 적지 않다. 부결 사태 후 이른바 '쇄신파'들이 보여준 행태 또한 그 중 하나다.
◈ 김용태 "대국민 사과 동의 못한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지 이틀 만인 지난 13일, 새누리당은 황우여 대표가 나서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황 대표는 국민과 약속한 불체포특권 포기를 지키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또 당대표로서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국민 눈높에 맞춰 철저하게 당 쇄신과 변화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황 대표의 사과가 끝나기 무섭게 쇄신파인 김용태 의원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김 의원은 방금 전 끝난 황 대표의 대국민 사과에 동의할 수 없다고 정면 반박했다. 그리고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이 정말로 국민에게 사죄해야할 내용이라면 그것을 주도한 자신부터 당에서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그것이 당원권 정지든 출당이든 기꺼이 감수하겠다고도 했다.
김 의원은 원내지도부가 지난 11일 체포동의안을 처리함에 있어 의원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런 상황에서 자신과 남경필 의원 등이 의원 총회와 본회의의 발언을 통해 체포동의안에 입법적 하자가 있음을 지적하자 의원들이 동의해주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논리적으로 납득시키지도 못할 일을 지도부가 밀어붙여 화를 자초했다는 주장이었다.
주장의 옳고 그름은 따져볼 일이겠으나 어쨌든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하고 그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요즘 정치권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회견이었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솔직히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좀 무모해보인다는 얘기들도 있었다.
하지만 회견을 지켜보면서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회견 전에 분명 남경필 의원과 상의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남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남경필 "생각 좀 해볼게"
당 지도부의 대국민 사과에 앞서 의원총회가 열렸다. 부결 사태 이후 분위기가 극도로 안 좋았던 탓인지 의총장에서 부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발언은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내 최대 주주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 의총 참석에 앞서 "체포동의안은 당연히 통과 됐어야 되는 것인데 반대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마음"이라며 유감을 표명한 것도 영향을 미친 듯 했다.
남경필 의원의 반응이 궁금했다. 남 의원은 부결을 주도한 쇄신파 내 최다선인 5선 중진 의원으로 뭔가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야당과 비 박근혜계에서는 박 전 위원장이 말 한마디로 모든 걸 정리했다는 비판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의원총회가 끝나자 남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메라 기자와 함께 마이크를 들고 남 의원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런 식의 인터뷰는 의원총회 전후에 종종 있는 일로 사실 별로 특이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남 의원은 그냥 지나치려 했다. 팔을 붙잡고 한마디만 묻자고 하자 상임위 회의에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곤란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마이크를 끄고 다시 물었다. 지난 11일 체포동의안 부결을 주장했을 때와 아직도 같은 입장이냐고 확인을 요청했다. 5선 중진이라는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남 의원은 "생각 좀 해볼게"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후 남 의원은 김용태 의원의 기자회견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 남경필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을 주장했던 자신의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문제점도 거듭 지적했다. 그리고 검찰이 원할 때 무조건 구속시킬 수 있는 특권을 주는 것이 쇄신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뭔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졌다.
◈ 정치… 결단의 미학
남경필 의원과 김용태 의원은 여론의 역풍에도 불구하고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가 부당하다는 견해를 철회하지 않았다. 정치가 민심을 대변해야 하는 것인 만큼 이들의 행동이 꼭 옳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나 여론에 따라 춤추듯 입장을 바꾸는 게 세태이고 보면 나름 평가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한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정치는 순간 순간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선택은 종종 결단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위험 부담이 따르는 경우가 그렇다. 결단의 빠르고 늦음을 갖고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빠른 결단이 자칫 경솔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결론을 내림에 있어 시간차가 나는 것에는 그에 따른 평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평가가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