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만사형통으로 불렸던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이명박 정권의 개국 공신이랄 수 있는 정두언 의원이 소환조사를 받은 데 이어 제1 야당의 원내대표인 박지원 원내대표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 여야, '저축은행 국정조사' 한 목소리
검찰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여야가 일제히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지난 정권 이후에 누적된 부정부패 비리사건이라며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 정권과 연루된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파헤치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이 원내대표는 상임위에서 청문회를 하고 국정조사도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필요하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검찰 수사에서 이상득 전 의원을 비롯해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 등 거물들의 혐의가 드러나고 있는 만큼 검찰 수사결과를 지켜본 뒤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정치권이 나서 따져 볼 수 있다는 취지였다.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는 검찰을 향해 수사를 보다 철저히 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저축은행 국정조사는 국회의 책무라며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이 말하는 것처럼 '필요하다면' 하는 게 아니라고도 했다. 나아가 저축은행 국정조사 추진은 19대 국회 원 구성 협상 때부터 민주통합당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사안이라며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제안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반대로 일관하던 새누리당이, 이제 와서 저축은행 국정조사를 언급하는 것은 박지원 원내대표의 금품 수수설을 흘리고 있는 정치 검찰의 의혹 부풀리기를 도와 야당 원내대표를 흠집 내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 여야, "손해볼 것 없다"
비리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인 만큼 여야 모두 적극적인 입장이다. 다른 사건도 아닌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에서 뒤로 빠지는 모습을 보일 경우 즉시 궁지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도 대부분 서민이다. 그만큼 폭발력도 크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름 득실 계산도 끝낸 걸로 보인다. 새누리당에선 저축은행 사태가 옛 김대중 정권 때부터 잉태된 걸로 보고 있다. 본격적으로 캐기 시작하면 전 정권 문제가 더 많다는 주장이다. 특히 현 야당에 직접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노무현 정권 때 비리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을 놓고 봐도 실보다는 득이 많다는 판단이다. 새누리당에서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은 이상득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이다. 타격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현 주류인 친박계와는 모두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다. 반면 야당에서는 원내사령탑인 박지원 원내대표가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주류 중에도 핵심인물인 셈이다.
민주통합당 생각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의 핵심인 박근혜 전 위원장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호재 중의 호재로 보고 있다. 지금은 유야무야되긴 했지만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와 박근혜 전 위원장의 접촉설, 박근혜 전 위원장의 동생인 박지만씨 부부와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회장 관계 등을 적극 공략 대상으로 보고 있다.
새누리당이 전 정권 비리 운운하고 있는 문재인 고문에 대한 비리 의혹도 별게 없다는 자체 판단이다. 박지원 원내대표 부분도 본인이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문제될 게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진짜 할까?'에는 '글쎄'...
여야 모두 손해볼 게 없다는 식이지만 저축은행 국정조사가 진짜 실행에 옮겨질지는 미지수다. 국정조사의 속성상 정치공방으로 이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정치공방에서 사실 관계는 묻히게 마련이고 정치인에게 작지 않은 상처를 남긴다.
친박계 핵심관계자는 박근혜 전 위원장의 경우 저축은행과 관련해 제기됐던 의혹들을 살펴봤지만 사실 관계에서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로비스트인 박태규씨는 박근혜 전 위원장과 만난 적이 없다고 스스로 밝혔고,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회장도 박지만씨와는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국정조사가 시작되면 야당에서 쏟아내는 각종 루머와 비방성 음해들이 인터넷과 신문을 도배하기 시작하면서 박 전 위원장의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걱정도 마찬가지다. 당내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과 원내대표인 박지원 원내대표가 여당과 검찰의 협공을 받게 될 경우 타격이 불가피하다. 진짜 결백하다해도 이미지 훼손까지 막기는 힘들다. 법정 공방을 통해 문제가 없다고 입증해봐야 선거가 끝난 뒤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여야 핵심 관계자들 사이에 저축은행 국정조사 실시여부를 놓고 의사타진이 있었다고 한다. '정말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원론적 수준'이라는 답변이 나왔다고 한다. 여야 모두 부담스러운 일이란 얘기다. 그만큼 조심스럽기도 하다.
마지막 변수는 검찰 수사다. 뭔가 빌미를 남긴다면 여야의 미묘한 신경전은 균형이 깨지게 된다. 대선을 앞둔 일전이 불가피해진다. 국민 스스로 정치공방과 진실을 가려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