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한ㆍEU(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이후 1년 새 EU산 농산물 수입이 급증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수입액 증가에도 국산 농산물 가격이 상승한 덕에 농축수산업의 피해가 우려했던 만큼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 개방의 수위가 높아지는 FTA 특성상 EU의 수출 공세가 앞으로 거세질 것으로 보여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가 시장 개방에 따른 국내 피해를 줄이려고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놓았지만, 농어민 보호에 치중된 지원책으로는 장기전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는다.
농축수산업 선진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함께 농어민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수입 증가에도 피해 미미…앞날은 `먹구름' 29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한ㆍEU FTA가 발효된 작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EU산 농식품 수입액은 26억3천만달러다.
2010년 7월 이후 11개월간 수입액 21억2천만달러보다 23.9% 급증했다.
같은 기간 EU로 수출한 액수는 3억5천만달러로 5.8% 증가하는데 그쳤다.
EU산 농식품 수입이 늘었지만, 농업 피해 신고소인 `FTA 이행에 따른 농어업인 등 지원위원회'에 신고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FTA에 따른 수입 증가로 국산 농수축산물 가격이 평년 가격의 90% 미만으로 하락하면 차액의 90%를 직불금으로 보전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7월 이후 작년 말까지 실태 조사에서 직불금 지급 대상은 한 건도 없었다.
농가 피해 신고가 없는 것은 EU산 농식품이 미국 등 외국산 농식품을 대체해 국산 농식품 가격의 하락폭이 작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작년 7월 이후 11개월간 EU산 돼지고기 수입액은 전년 동기보다 49.7% 늘었다.
작년 국내 구제역 사태로 정부가 무관세로 26만t을 수입한 점이 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5월 말 현재 kg당 약 5천원으로 평년의 4천700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EU산 홍어 수입도 145.7% 급증했으나 칠레산 홍어를 대체해 국내산 홍어 가격은 오히려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FTA 발효 후 매년 시장 개방이 확대되면 누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한ㆍEU FTA 발효 후 국내 농축수산업의 피해가 5년차 때 1천127억원에서 10년차에 2천565억원으로 배증하고, 15년차에는 3천172억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낙농제품은 5년차에 생산 감소액이 97억원 정도지만 15년차에 8배를 넘는 805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형할인점에서 100g당 6천원 선에 판매되는 프랑스산 치즈는 15년 동안 36%의 관세가 철폐돼 가격이 4천원 아래로 떨어지면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농민들 "정부 대책 한계"…전문가 "농업 자생력 키워야" 정부는 가격 경쟁력을 가진 EU 농축수산물에 국내 시장이 잠식당할 것에 대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다.
FTA 피해 산업에 세금혜택 30조원, 재정지원 24조원 등 모두 54조원이 지원된다.
정부는 한ㆍEU FTA 등 여파로 가장 피해가 클 것으로 전망되는 축산업을 지원하려고 작년부터 10년간 2조원 규모의 보완대책을 수립했다.
한ㆍ미 FTA가 발효된 올해부터 10년간은 축산발전기금 2조원을 추가로 확충한다.
밀, 콩 등 19개 품목을 대상으로 한 밭농업 직불제와 육지에서 일정거리 이상 떨어진 어촌마을을 지원하는 수산 직불제도 도입했다.
농축수산업계는 단기적인 대책으로 중장기적인 FTA의 피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0~15년 후 관세가 전면 철폐됐을 때 국내 농업이 위기에 처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FTA로 40% 수준인 관세가 15년에 걸쳐 철폐되더라도 사료 값 등 생산 비용과 유통비용을 연간 2.7%씩 줄여 경쟁력을 키우면 된다는 견해를 보이지만, 농수축산업계는 현실성이 약하다고 반박했다.
곽길자 전농 정책국장은 "FTA에 따른 농업 피해는 규명하기가 상당히 어려워 단기간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며 "관세가 대폭 철폐되는 10년 이후 한국 농업이 붕괴하고 식량 주권이 위협받을 수 있지만, 적절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농업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 지원 방안이 개선돼야 하지만, 농민 자신도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농민들이 연합해 마을 단위로 농산물을 생산ㆍ가공하거나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발굴하면 정부가 상업화를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 문한필 농업통상팀장은 "농가가 개별적으로 정부 지원을 받으려 하기보다 농산물 생산, 가공, 유통 시스템을 모두 갖춘 거점산지유통센터(APC)를 주도적으로 조직화해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전문가를 지원해 조직화를 유도하고 사후 지원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