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남의 눈을 피해 숨어 산 이유는 종교 때문이었을까, 교단의 지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의지였을까.'
1995년 일본 옴진리교 지하철 독가스 살포 사건의 마지막 수배자 다카하시 가쓰야(高橋克也.54)가 붙잡히자 세간의 관심이 장기간 도주 생활의 버팀목은 뭐였을까라는 점에 쏠리고 있다.
교단의 동료들이 모두 붙잡히거나 자수했는데도 혼자서 도쿄 근처에서 직장까지 다니며 생활해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17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첫번째 가능성으로 떠오른 건 다카하시가 여전히 옴진리교를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다카하시가 경찰에 붙잡히기 직전에 요코하마의 한 코인 로커에 넣어둔 가방에서는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본명 마쓰모토 지즈오<松本智津夫>.57)의 설법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와 사진이 발견됐다.
아사하라의 저서 등 옴진리교 관계 서적도 여러권 들어 있었다.
작년말에 자수한 히라타 마코토(平田信.47)가 "더이상 옴진리교를 믿지 않는다"고 밝힌 것과 달리 다카하시는 경찰에 붙잡힌 뒤에도 "나 자신을 알 수 없게 돼버렸다"고 말하긴 했지만 옴진리교를 버렸다는 말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본 언론은 다카하시가 깊은 신앙심에 의지해 도주 생활을 계속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두번째는 교단의 조직적인 지원 가능성이다.
다카하시는 1995년 3월에 교단이 일제 수색을 받자 교단이 마련해준 아지트 등지를 거쳐 요코하마, 가와사키의 호텔이나 아파트에 잠복했다.
이후에도 실존 남성 2명의 이름으로 예금 계좌를 만들어 사용했고, 이 계좌에 직장에서 받은 급료 등을 입금했다.
경찰은 현재 이 계좌를 통한 돈의 흐름을 추적하면서 다카하시가 교단의 지원을 받아 도주생활을 계속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카하시가 중형을 두려워한 나머지 치밀한 준비를 거쳐 장기간 도주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다카하시는 경찰에서 "나는 죄가 가벼운 이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계속 도망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한동안 함께 도주했던 옴진리교 전 신자들에 따르면 다카하시는 수시로 "절대로 (경찰에) 안 간다"거나 "무기징역은 싫다"고 말했고, 다른 이들이 명상에 잠길 때에도 뉴스를 보면서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하시는 경찰에 붙잡히기 직전까지도 만화카페(PC방과 만화방을 합친 형태)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한편 다카하시가 1995년 3월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살포사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당시 직접 가스를 살포할 실행범이 타고 갈 차를 운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카하시는 경찰에서 "차 안에서 갈색 액체를 봤다. 사린은 무색투명하기 때문에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