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3세 배정미씨와 부친은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히로노마치(廣野町)에서 민박 '히로노 드라이브인'을 운영하고 있다. 방사성 물질을 대량 방출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불과 20.5㎞ 떨어진 곳이다.
배씨 부녀도 지난해 3월 원전 사고가 터진 뒤 잠시 멀리 떨어진 도시로 피난을 갔다.
하지만 잠깐 민박에 들렀다가 주변을 지나던 이로부터 '원전 복구 작업을 하는 근로자들이 숙식을 해결할 곳을 찾는다'는 말을 들었고, 곧바로 영업을 재개했다.
인근 주민들은 모두 피난갔고, 가게도 문을 닫았는데 원전 주변 20㎞ 권역에 설치된 경계구역 부근에서 홀로 민박을 운영하는 것이다.
방사능이 무섭지는 않을까. 배씨는 이 질문에 "후쿠시마현 전체가 방사능 오염으로 진통을 겪고 있으니 히로노마치가 더 심할 건 없다"며 "대단한 걸 차려줄 순 없어도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재일동포 2세 홍계자씨는 쓰나미(지진해일)로 이와테(岩手)현 오후나토(大船渡) 시내에서 운영하던 빠찡꼬 가게를 잃었다.
홍씨 일가가 쓰나미 피해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60년 칠레 발디비아 지진 당시 쓰나미가 오후나토를 덮쳤을 때에도 빠찡꼬 가게가 침수됐기 때문이다. 당시 홍씨 부모는 모리오카(盛岡)에서 오후나토로 이주해 가게 문을 연 지 3년 만에 이같은 일을 당했고,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 보상에서도 제외될 뻔했다.
홍씨는 "어머니는 늘 '그때는 차별도 받았는데, 지금은 쓰나미 피해 뿐이잖느냐'고 말한다"며 "물론 힘이 든 건 사실이지만, 이번에도 털고 일어날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오후나토 부근 가마이시(釜石)시에 사는 재일동포 2세 김영남씨는 한국 식당을 운영하다 쓰나미 피해를 계기로 펜션을 개업했다.
김씨는 지난해 동일본대지진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김씨가 노모와 함께 식당 건물 2층으로 피한 뒤에도 아내는 1층에 있는 식당 주방을 정리하다 갑자기 밀어닥친 수마를 피하지 못했다.
노모는 며느리를 잃은 충격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됐고, 김씨도 물살을 뚫고 들어가서 아내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누워 있으면 노모를 보살필 이도, 요코하마(橫浜)에서 직장에 다니는 아들과 딸을 지켜줄 이도, 식당을 운영하면서 진 빚을 대신 갚아줄 이도 없다고 느꼈고, 다시 일어났다.
식당을 펜션으로 바꾸기로 한 이유는 대지진 피해 복구 작업을 할 근로자들이 머물 곳이 마땅치 않다는데 착안했기 때문. 김씨는 "가마이시에도 도움이 되고, 내 삶도 개척할 방법을 골랐다"며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라는 의미)는 도움을 받기보다는 도움을 줘야 하고, 더 강해질 수 밖에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도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