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일본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출장의 목적은 일본의 선진 방재시스템을 둘러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방문지는 도쿄의 '칸다가와 환상7호선 지하 조절지'였습니다. 이 시설물을 한 마디로 설명하면 '도심 지하의 초대형 물탱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올림픽대로 같은 간선도로 밑에 초대형 지하 물탱크를 만들어 비가 많이 올 때 빗물을 저장해 두는 곳입니다. 전문용어로는 '대심도 배수관'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 빗물 저장소는 말이 '물탱크'이지, 가로 세로 50미터짜리 수영장 1,800개 크기에 저수량도 54만㎥에 이르는 초대형 지하 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시장이 이 시설을 찾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울시도 이런 '초대형 물탱크' 건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여름, 10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에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 광장이 물에 잠겼습니다. 도심 교통은 마비됐고, 시민들은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고 다니는 황당한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울시가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광화문 광장 아래 '칸다가와 조절지'같은 초대형 빗물 저장소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시간당 75mm의 강우를 감당할 수 있는 지하배수시설을 시간당 100mm까지 수용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터널을 통해 빗물을 바로 청계천으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게 서울시의 구상입니다. 그리고 이번 출장은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앞서 먼저 만들어진 '완성품'을 견학하는 것이었습니다.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지금부터가 본론인데요, 일본으로 떠나기 전 함께 출장을 가게 될 출장자 명단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의외의 인물이 한 명 포함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대표적인 '4대강 반대론자'로 알려진 박창근 관동대 토목과 교수였습니다. 박 교수는 자신이 토목공학과 교수이면서도 대형 토목공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학자입니다. 대형 토목공사가 당장에는 경기 부양 등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연을 파괴하고 국민의 혈세가 낭비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일관된 입장이었습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광화문 대심도 배수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 교수는 이 공사가 무려 8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필요로하면서도 효율은 낮다고 지적합니다. 100년 빈도의 폭우를 위해 굳이 이렇게 엄청난 예산을 써야하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침수피해를 막기 위해선 주변 하천과 도심 배수로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는데 서울시가 그와 관련된 연구는 등한시했다고 비판합니다. 한마디로 '대심도 배수관'이 분명 도움은 되겠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박 교수가 일본 출장자 명단에 포함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번 출장에 박 교수를 데려가자고 추천한 사람이 다름 아닌 고태규 서울시 하천관리과장이라는 점입니다. 고 과장은 '광화문 대심도 배수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담당과장으로,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 과장은 시민 불편을 없애고, 앞으로 있을 기상이변에 대처하기 위해 이 대심도 배수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 고 과장이 자신과 전혀 생각이 다른 박 교수에게 일본에 같이 가자고 요청했다니 한편으론 재미있고, 또 한편으론 의아했습니다.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떠난 이번 출장은 예상대로 한시도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시작된 '말다툼'은 출장 기간 내내 계속 됐습니다. 때로는 몇 십 년을 함께 산 부부처럼, 또 때로는 만화영화 '톰과 제리'의 주인공처럼 지지고 볶고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아침식사 자리에서부터 회식자리까지, 심지어 호텔방에서의 밤샘 '끝장토론'까지 논쟁은 치열했습니다.
기자들을 상대로 한 홍보전도 치열했습니다. 제가 "이것 좀 알려 주세요"라고 질문하면, 마치 과외 선생님처럼 열정적으로 각자의 논리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박 교수가 "환경단체에서 당신을 직위 해제하라고 요구하는 걸 내가 말렸다"고 엄포를 놓고, 이에 고 과장은 "전문가 체면 때문에 내 말이 바르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맞받아쳤습니다.
고 과장은 왜 이런 박 교수에게 출장을 함께 가자고 요청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다른 의견을 가진 박 교수를 현장에 데려가 설명하고 이해시키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전문가로서 박 교수의 비판적 조언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박 시장의 표정은 흐뭇해 보였습니다. '제대로 싸울 수 있게 해 줄 테니, 한번 마음껏 싸워보라'는 일종의 박원순 식 용병술처럼 보였습니다.
솔직히, 비전문가인 제게는 두 사람의 논쟁에 시시비비를 가릴 전문적인 안목은 없습니다. 양쪽의 얘기를 충분히 비판적으로 듣고, 이를 왜곡되지 않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책을 추진하는 공무원이 전문가의 다른 의견을 충분히 귀담아 듣고, 비판적 의견도 정책에 반영하려는 모습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대형 사업인 만큼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는 끊임없는 비판과 회의(懷疑) 속에서 발전합니다.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싸움이 치열할수록 정책은 더 정교해질 겁니다. 또, 그만큼 시민은 더 행복해지겠지요. 부디 앞으로도 두 분이 최선을 다해 더 열심히 싸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