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서 납치 범죄는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사회악이다.
상업도시인 카라치의 조직폭력배들은 최근 30여년간 몸값을 노리고 부유층 가족에 대한 납치행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앞서 식민지 시절인 19세기에도 부족민에 의한 영국인 피랍 사건이 횡행했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아 파키스탄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0년 474건, 지난해 467건의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다만 달라진게 있다면 최근에는 탈레반이 납치 범죄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테러와의 전쟁으로 공격 능력이 약화된 탈레반이 최근 3년간 돈 많은 기업인이나 서방의 봉사활동 요원, 고위관리의 친인척 등 손쉽게 `군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납치에 주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0일 물탄시에서 구호활동을 하다 실종된 독일인(70)과 이탈리아인(24)은 현재 탈레반의 거점으로 미 중앙정보부(CIA)의 집중적인 작전지역인 북와지리스탄에서 탈레반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외에도 이란 국경으로 가던 중 행방이 묘연해인 스위스인 관광객 2명과 전직 펀자브 주지사의 아들인 샤흐바즈 타시르, 전직 합참의장의 사위 등도 탈레반에 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탈레반의 이같은 납치행각은 보안군의 공세로 대규모 공격 역량이 많이 약화된 상황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파키스탄 평화연구소(PIPS)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폭탄 공격은 전년보다 35% 줄었다. 자살 공격의 희생자도 2009년 3천21명에서 지난해 2천391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게 보안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탈레반은 지금같은 힘든 시기를 오히려 납치를 통해 군자금을 확보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탈레반은 `납치 비즈니스'를 조폭집단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용한다. 와지리스탄에 은신해 있는 지도부가 지령을 내리면 펀자브주의 탈레반 조직원이나 외국인 용병들이 행동에 나선다.
탈레반은 통상 50만∼220만달러의 몸값을 요구하지만 실제로 건네지는 액수는 10분의 1 정도에 그친다.
납치 과정은 아주 정교하고 치밀해 일단 대상자가 정해지면 수개월에 걸쳐 감시하는가 하면 납치 이후에는 피랍자가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도록 다양한 약물을 주사하기도 한다.
또 스카이프를 통해 동영상으로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임무별로 행동조를 바꾼다. 물론 이들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다.
납치 대상은 주로 돈 많은 기업인이나 군 당국자, 고위관리 등이며, 때로는 힌두나 시아파 무슬림 등 소수세력도 포함된다. 최근 검거된 탈레반 조직원의 손에는 주식시장을 주무르는 `큰손'들의 명단도 있었다.
피랍자들은 와지리스탄으로 끌려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지내다가 일부는 석방되고 일부는 죽음을 맞이한다.
펀자브주 출신의 한 기업인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태로 끌려가서 짐승처럼 두들겨 맞았고 석방을 둘러싼 가족들과의 피말리는 협상을 6개월간 지켜보다 어렵게 풀려났다고 회고했다.
억류 당시 현지에서는 4명의 10대 자살공격 요원이 아침에는 사상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폭탄이 장착된 조끼를 입고 실전에 대비한 자살공격 훈련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탈레반 교관들이 10대에게 "버튼 하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망상을 주입시키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뉴욕=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