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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치의 계절…'사투리'가 위험하다?

신문의 '사투리 인용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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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정치의 계절'인가 봅니다. TV도, 신문도 모두들 다가오는 4.11 총선 얘기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특히 4월 총선에 이어 연말에 대선까지 치르는 올해는 어느때보다 정치판에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어서 이런 관심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총선 예비후보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관심 지역의 여론 향배가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짊어진 문재인 민주통합당 고문과 '노무현 정신'을 실현하겠다는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일찌감치 뛰고 있는 부산·경남, 이른바 PK 지역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이번 주 들어 몇몇 신문이 PK 지역의 민심을 전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현지에서  '전송'된 이 기사들은 지역 유권자들이 최근의 정치상황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발언 내용을 큰 따옴표로 잇따라 옮기는, 이른바 '인용 보도'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인용한, 즉 큰 따옴표 안에 있는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뭔가 특이한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 번 보시죠. 지난 2월 13일, J일보 6면에 실린 "PK 가보니…'문재인 좋아해예, 박근혜는…"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큰 따옴표로 인용된 부분을 표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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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목한 것은 바로 '사투리'입니다. 굵은 글씨로 표시해 뒀지만, 일부 발언에 사투리가 그대로 인용돼 있습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사에 그대로 담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고 추정해 볼 수 있는데요, 특이한 것은 유독 '야권 성향'의 발언에만 사투리가 노출돼 있다는 겁니다. 야권 지지 성향의 발언이지만 사투리로 인용되지 않은 경우는 '덕천로터리 이기근씨'의 "안 원장에 관심이 많다"라는 인터뷰와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의 "김(두관) 지사가 인기가 많다"는 인터뷰 정도입니다.

특이한 점은 또 있습니다. 표 마지막에 '김해에서 만난 김광빈씨(*)'의 인터뷰를 보시죠. 김씨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 "웬만한 남자보다 낫다"고 칭찬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기사 중간에 '봉하마을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만난 김광빈씨'로 이미 한 번 인용돼 있습니다. 제가 직접 만난 분이 아니라서 완벽하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봉하마을이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동일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한 번은 '봉하마을 근처'로, 한 번은 '김해'로 썼다는 점만 다른거죠. 그런데 신기하죠. 이 분이 '안철수 교수'에 대해 한 긍정적인 평가는 "안철수가 낫다 카는데"라며 사투리 그대로 인용됐고,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위에서 보듯이 표준어로 인용됐습니다.

다시 시선을 제목으로 돌려봤습니다. 이런 특이점을 마치 예고라도 한 듯 합니다. 문재인 고문에 대해서는 "좋아해예"라고 사투리를 노출시켰고 박근혜 위원장은 말줄임표로 마무리했습니다. 이쯤 되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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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사 초반에는 사투리를 인용하면서 현장성을 부각시키다가 기사 말미로 갈수록 초반의 의의가 퇴색됐다고 판단해서, 원래 사투리로 돼 있던 인터뷰 내용을 표준어로 바꿨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게 마침 '돌풍의' 야권 지지 성향으로 시작해서 '전통의' 여권 지지 성향으로 끝나는 기사의 흐름과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죠. 기사를 수정하는 '데스킹'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제가 가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깨달음을 달라고 메일을 보내 문의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15일 M일보 4면의 기사에도 짧게나마 비슷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기사 제목은 PK지역의 민심을 취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해준게 뭐 있노, 바꾸제이~' vs '투표함 열어봐야 안데이~'"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계속 찍어줬는데 한나라당(새누리당)이 해준 게 뭐 있노. 이번엔 바꿔야 한다."

"야당 바람이 분다지만 투표함 열어보면 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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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서 해당 발언을 한 인터뷰이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역시 야권 지지 성향의 발언은 "해준 게 뭐 있노"라며 사투리로 인용돼 있고, 여권 성향의 발언은 표준어로 돼 있습니다. 기사 제목은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모두 사투리로 인용돼 있습니다만, 기사 본문에 들어가 보면 여권 지지 성향의 내용은 정색을 하고 표준어로 적혀 있는 겁니다.

사투리 보도, 왜 위험한가?

개그프로에서 자주 보는 '흉내' 단계를 넘어서, 사투리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된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짧지 않은 한국정치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사투리 가운데 하나로 누구나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남이가"라는 발언입니다. 지난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지역의 정부 기관장들이 한 복요리 식당에 모여 당시 여당의 대통령 후보인 김영삼씨를 당선시키자고 논의한 내용이 경쟁 후보측에 의해 폭로됐습니다.  이때 기관장들의 발언 가운데 가장 많이 회자된 내용이 바로 "우리가 남이가"입니다. 그러나 이 보도는 폭로자의 당초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여당 후보의 지지세력이 결집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기관장들이 모여 관권선거를 모의했다는 '팩트'보다는 거주지 침입과 불법 도청을 실행한 상대 후보측에 대한 윤리적 비난 여론이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거세게 불타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 마디 말이 가진 힘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만약 이 발언이 "우리가 남이냐", 또는 "우리는 남이 아니잖아"라는 표준어로 보도됐다면, 과연 그만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언론에 활자로 인용되는 거의 모든 공적 영역의 발언은 발화자의 언어사회적 배경과 관계없이 '표준어'로 인용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사투리가 심한 정치인이나 학계 인사도 말이 아닌 글로 발언이 인용되면 '표준어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사투리라는 '형식' 때문에 논점이 흐려지거나 다른 해석을 낳게 하는 것을 피하고, 발언 내용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기 위한 기본적인 시스템입니다.

활자 언론의 사투리 보도는 지역의 의미있는 정치적 움직임을 '그 지역만의 것'으로 눌러 앉힐 수도 있고, 지역 유권자들의 소신있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방해하는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말'이 아닌 '글'로 전해지는 사투리는, 이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로 폄하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이 지점에서 2차, 3차의 오해와 갈등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활자 언론을 신중하게 읽은 독자들 가운데 다만 일부라도 '아, 그렇구나'라는 느낌이 아닌 '이거, 뭔가 있는 거 아냐?'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면, 기사가 당초 전달하려고 한 의도마저 퇴색돼 버리고 맙니다. 이쯤 되면 기사가 반드시 담보해야 할 '중립성' 측면에서 해당 기사를 높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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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재 기자 기자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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