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취재파일] 돈 줄테니 보내라? 어딜 보내죠?


구글에서 SBS뉴스 즐겨찾기 추가
대표 이미지 영역 - SBS 뉴스

"돈 줄테니 보내라? 보낼 곳이 있어야 보내죠!"

요즘 어린이집 때문에 폭발 직전인 부모들이 쏟아내는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전편인 무상급식에 이은 무상시리즈 2탄 '무상보육'이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취학 전의 아이가 있으신 분들은 지원 내용에 대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처럼 그렇지 않은 분들은 헷갈리기 쉽죠. 간단히 정리하면, 오는 3월부터 만 5세 영유아는 유치원을 다니면 유치원비를, 어린이집을 다니면 어린이집 비를 정부가 지원합니다. 유치원을 못 다니고 어린이집만 다니는 나이인 만0세부터 2세에 대해서는 어린이집비를 지원합니다. 한 달에 3만 원만 공짜로 나눠준다고 해도 신청이 쏟아질 텐데 사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의 경우 30만 원 가까운 돈을 지원해 준다니! 요즘 영유아를 둔 부모들에게 보육료 지원 신청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보육료 지원이 부모와 정부 모두에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를 낼 것 같은데 현실은 다릅니다. 이유가 뭘까요? 맨 위에 살짝 적었듯 보낼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 5동에 사는 만 2세 남아를 둔 한 어머니를 설득해서 어린이집 구하는 길에 동행해 봤습니다. 방송 뉴스를 만들기 위해 몇 년을 기자로 살아왔지만 저는 늘 섭외가 가장 어렵습니다. 어려운 섭외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린이집에 보낼 연령의 아이를 둔 부모를 구하는 일도 난이도로 치면 상(上) 정도 됩니다. 어린이집이 부모에게 있어서는 '슈퍼 갑(甲)'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어린이집에 대해 나쁘게 말했다가 아이가 불이익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할까봐 걱정하는 속사정이 숨어 있습니다.

선배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취재에 응한 이 어머니가 어린이집을 구하는 조건은 첫째, 안전한 놀이시설이 갖춰져 있을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걸어서 갈 수 있거나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갓 열이 떨어져서 심기가 불편한 아이와 함께 걸어서 갈 수 있는 어린이집부터 시작했습니다. 4살 반 있냐고 한 마디 물어보자마자 다 찼다는 안타까운 대답이 돌아옵니다. 이번엔 조금 더 멀긴 하지만 영어 과정이 있다는 곳을 찾았습니다. 역시 현관에서부터 자리 없으니 대기 명단에 올려놓으라는 설명입니다. 어머니를 지켜보려고만 했던 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불쑥 끼어들었습니다.

기자: "원래 자리가 없는 건가요?"

원장: "아시고 나오신 거 아닌가요?"

기자: "알고 나오다니요? 저는 어린이집 입학이 어렵다고 해서 동행하는 중인데요?"

광고
광고 영역

원장: "3월부터 돈 지원한다고 해서 난리잖아요. 안 보내던 부모님들도 다 보내려고 해서 그래요."

아, 정말 어린이집에 다들 몰려오는구나. 대충 감을 잡았지만 확실하게 확인할 겸 다른 곳을 또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대기하는 아이 103명. 올해 안에 입학은 사실상 불가능' 이라는 씁쓸한 현실. 어머니는 이후에도 몇 군데 더 다녀봤지만 결국 보낼 곳이 없어 대기 명단에만 이름을 걸어놓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조건에 맞는 곳은 커녕 빈자리 하나 구하지 못했다는 게 너무 힘들다"는 어머니의 말이 맴맴 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 어머니가 사는 신길 5동이 속한 서울 영등포구의 어린이집 수급률은 115.5%입니다. 수급률이라는 건 보육 수요에 비교해봤을 때 해당 지역의 어린이집 정원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인데, 수요보다 공급인 정원이 더 많으면 많을수록 수치가 커집니다. 100면 수요와 정원이 딱 맞는다는 의미고 100보다 작으면 부족, 크면 여유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럼 영등포구는 115가 되니까 부족 현상이 없어야 하는데 왜 위에 어머니와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나는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서울시 전체의 정원 충족률을 살펴봐도 88%에 불과해서 10% 이상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왜 그런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정답은 보육 수요에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보육수요를 계산할 때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는 연령의 아이가 한 지역에 100명 있다고 치면, 그 중에 40~50명 정도만이 실제로 어린이집을 다니고 나머지는 가정에서 양육되거나 다른 놀이방 등을 이용할 것으로 내다보고 정책을 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보육료를 지원한다는 소식에 '집에서 기르면 나만 손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너도나도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하다 보니 40명 정도에 불과했던 보육수요가 크게 늘어나게 됐습니다. 당연히 부족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수급률에도 허점이 있습니다. 영등포구 전체의 수급률을 보면 괜찮아 보이지만, 각 동별로 세밀하게 들어가서 살펴보면 수급률 차이가 크게 4배까지 벌어집니다. 어떤 곳은 60%로 만성적인 어린이집 부족에 허덕이지만, 어떤 곳은 300% 가까이 돼서 남아도는 곳도 있습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보면 부족한 곳의 아이를 남는 곳의 어린이집으로 보내면 될 것 같지만 이 또한 현실에 맞지 않는 이야깁니다.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야하는 부모들의 현실을 생각해야 하니까요.

보건복지부 보육정책을 담당하는 과에 최근의 부족 사태를 미처 내다보지 못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만 5세에 대한 지원은 전부터 이미 계획이 나와있던터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인허가를 담당하는 지자체에 준비할 시간을 줄 수 있었지만, 만 0세에서 2세에 대한 지원은 지난 한 두 달 전 급히 확정되면서 대비를 못했다는 겁니다. 그동안 여러 언론에서 보도했던 것처럼 총선 전에 생색내려고 급조한 정책이 아니냐는 의혹이 적어도 모두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보육료 지원정책이 아이들을 밖으로 내몬다고 비판합니다. 만 0세에서 2세는 가능하면 가정에서 양육되면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게 좋은데, 보육료 지원을 통해 아이들을 모두 밖으로 몬다는 거죠. 어린이집 보내야만 지원해주고, 집에서 기르면 지원이 안 되니 이런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빗발치는 비난에 복지부는 이달 말까지 대책을 마련해 내놓겠다고 합니다. 어린이집 인허가 조건을 완화해주고, 수급률 파악도 동 단위 등으로 좀 더 세분화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당장 다음 달 부터 지원을 받으려면 부모들은 등록기간인 이번 달 안에 어떻게든 어린이집을 찾아야 합니다. 대책은 늦게 나오고 보낼 곳은 없어 속만 타들어가는 요즘. 준비되지 못한 정책이 어떤 혼란을 가져오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