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제법 여러 마리였습니다. 보통은 7-8마리. 새끼를 포함하면 열 마리가 넘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10살 정도 되는 여자 아이의 걸음으로 열 보 이상 달릴 수 있는 외양간에 줄줄이 매여있던 소들.
앞에는 아빠가 시멘트를 직접 발라 만든 여물통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추운 겨울, 만지면 손이 쩍쩍 달라붙긴 해도 소 고삐를 매어놓기엔 더할 나위없이 든든한 철로 된 봉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열 손가락이 다 필요할 만큼 소가 많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냄새는 지독하지만 의외로 깔끔을 떠는 돼지를 키우다가 내다 팔고, 여름 내 땀흘리며 고추농사 지은 돈을 모아 소를 샀습니다. 먼저 암소를 들여온 후에, 무뚝뚝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소가 아픈 곳은 없나 언제나 찬찬히 봐주는 수의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한 마리 한 마리 늘려가는 거죠.
수의사 아저씨가 비닐 장갑을 단단히 끼고 소 엉덩이에 손을 쑤욱 집어넣어 인공 수정을 할 때면, 어쩐지 소가 불쌍하면서도 얼른 건강한 새끼를 낳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임신한 소가 새끼를 낳는 날이면, 온 식구는 바빠집니다. 엄마는 동네에서 돼지를 많이 키우는 아저씨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하고, 아빠는 연신 외양간을 들락날락거리며 산파 노릇을 합니다.
왜 소들은 꼭 밤에 새끼를 낳는 건지... 뉴스도, 드라마도 모두 끝나 잠에 겨워 눈을 비빌 때 쯤 되었을 때, 엄마가 상기된 얼굴로 방에 들어와 새끼를 낳았다고 알려줍니다. 그럼 춥고 졸립긴 해도 우리 집 새 식구가 생겼으니 엄마 등 뒤에 숨어 태어난 새끼를 구경합니다.
어미소가 핥아주고 있는 작고 귀여운 송아지. 조금 더 졸음을 참고 있으면 곧 비틀대며 일어나 엄마 젖을 연신 빨아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송아지는 엄마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엄마가 읍내에서 사온 분유를 젖병에 타서 정성스레 먹였던 생각도 납니다.
소를 기르는 데 가장 골머리를 앓는 건 역시 여물입니다. 시골 어르신들은 사람은 굶어도 소는 굶기면 안 된다며 집을 도통 비우지 않습니다. 행여, 불가피한 일 때문에 멀리 가게 되면 아랫집이나 윗집에 꼭 소 여물을 부탁하죠.
당시, 저희 집 부엌에는 가마솥이 세 개가 걸려 있었는데 가장 크고 넓은 가마솥에다가는 소 여물을 끓이고, 나머지 두 개는 밥을 하거나 물을 끓이곤 했습니다. 아빠의 가운뎃 손가락 마디 하나를 빼앗아간 무서운 작두에다 옥수수대를 써걱써걱 썰고, 짚도 적절히 섞어서 펄펄 끓인 소 여물. 한 바가지 퍼다가 통에 부어주면 세상 별미인양 정신없이 먹는 소들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래도 역시 소가 제일 신통방통할 때는 밭을 갈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잘 휘어지고 단단한 나무를 골라 코뚜레를 한 소들 중에 힘이 세고 온순한 녀석을 고른 후 '멍우'라고 불렀던가, 철사를 마치 벌집처럼 얽어매서 만든 그물을 씌웁니다.
아빠가 흥얼거리며 "돌아서라~"하고 타령을 하면 느릿느릿, 그러나 귀신 같이 방향을 바꾸던 소들. 밭 한 쪽에 엄마가 깔아준 돗자리 위에서 숙제도 하고 동화책도 보다가 해질 무렵 소와 함께 돌아오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든 소와의 작별은 불쑥 찾아옵니다. 새벽녘. 이불 속에 파묻혀 정신 없이 자다가도 귀에 들리는 소장사의 트럭 소리. 아빠와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일찍 일어나 소에게 마지막 여물을 정성스레 챙겨줍니다. 소를 가두는 시설이 돼 있는 소 장사의 트럭을 외양간 앞에 대면 아빠는 말 없이 고삐를 풀고 코뚜레를 움켜 쥡니다.
그렇게나 온순하고 말 잘 듣던 소도 이렇게 가면 영영 이별인 줄 아는지 나가지 않겠다고 자꾸만 버티고, 소장사까지 합세해 진땀을 한참 빼야만 소를 트럭에 실을 수 있습니다. 말이 없던 아빠가 "잘 가라!" 소가 탄 트럭 화물칸을 툭툭치면 소 장사는 담배를 비벼끈 후 또 다른 소를 사러 새벽길을 떠나갑니다.
크고 선한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우리집 소. 결국 엄마도 외양간 문 앞에 서서 눈이 빨개지도록 울고, 자세한 영문을 모르던 저도 엄마가 우는 데다 소가 아주 간다는 생각에 함께 울었던 기억이 선합니다. 그래도 그렇게 가슴 아프게 팔려간 소들 덕분에 부모님은 읍내에 번듯한 가게도 냈고, 저도 도회지로 나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무사히 다닐 수 있었습니다.
제 나이 올해 서른. 부모님이 소 키우는 것을 그만둔 지 벌써 15년이 넘었습니다. 게다가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가끔 시골가서 흔적만 남은 외양간을 볼 때 빼고는 사실 소에 대한 생각은, 영화 워낭소리를 볼 때 가장 간절했을 뿐 거의 하지 않고 지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소가 자꾸 뉴스에 나오더니 크게 오른 사료값 때문에 급기갸 소들이 굶어죽었다는 소식마저 들려오네요. 소는 농부에게 자식 같은데... 사람 끼니는 굶어도 소는 안 굶기는데...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키우던 모습만 옆에서 봤던 저도 이렇게 속상한데 직접 수개월에 걸쳐 애지중지 키운 농부의 마음은 요즘 어떨까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죠. 여러 언론사들이 기사를 통해 지적했듯이 시장 변화를 읽지 못하고 사육두수를 계속 늘려온 농가 탓도 있을 거고, 이 지경이 되도록 손 놓고 방관한 정부 책임도 클겁니다.
뒤늦게 이런저런 대책도 쏟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사람의 잘못 때문에 애꿎은 소만 고통받고 있는 꼴인 것 같습니다. 큰 눈을 꿈뻑이며 김이 펄펄 나는 여물을 먹던 소가 떠오르는 요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