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발표 이후 일주일이 지나면서 한반도 정세가 외견상 급속히 안정화되는 모양새를 띠어가고 있다.
불안정성의 진앙지인 북한 내부가 '속도감 있게' 김정은 중심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주변 4강과 한국도 새로운 체제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외교적 행보를 가속화하는 흐름이다.
특히 한반도 상황의 안정을 명분으로 동북아 다자외교의 틀인 북핵 6자회담의 재개 움직임이 다시 탄력을 받는 기류여서 정세 전반의 긴장도가 크게 이완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 중심체제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구축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현재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정은을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맡고 있던 최고사령관직에 이어 당 총비서로까지 공식 추대하려는 내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권력의 양대 축인 군(軍)과 당(黨)에 대한 장악이 신속히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같은 타이틀상의 위상조정에 이어 김정은 체제의 정통성을 떠받칠 '유훈통치'도 본격화되고 있다. 김정은이 애도기간이 끝나는 대로 권력승계를 조기에 굳히며 김정일 노선을 그대로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미·중·일·러 등 주변 4강은 각각의 전략적 입장차를 뒤로 한 채 '한반도 안정화'를 목표로 김정은 체제를 공식적 지지 내지 인정하는 신호음을 발신하고 있다. 적어도 현 국면에서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우호적 대외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대북 원칙론을 강조해온 한국도 정책기조의 선회 가능성을 시사하며 대북 관여의 수준을 놓고 고심 중이다.
특히 북한의 후견역을 자처하는 중국이 김정은 체제의 안착을 유도하기 위해 적극적 외교력을 행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 원자바오 총리에 이어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관련국 공통의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27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한·중 전략대화가 주목된다. 북한에 대한 시각과 접근태도에 차이가 있는 형국이지만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라는 '공통의 코드'를 확인하며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다짐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표피적으로 드러난 단기적 안정화 흐름 만으로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 여부를 속단하기는 이르다.
현재 북한 내부는 김정일 위원장의 급작스런 유고에 따라 '충격'을 흡수해가는 과정에 놓여있으며 각 세력이 '본색'을 드러내기 보다는 김정은 중심으로 내부 결속을 도모하는 국면이라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렇게 볼 때 현국면에서 북한 정권의 중심으로 등장한 김정은 체제가 신년초에 어떤 대외정책 노선을 표방하고 나올 지가 북한 내부와 대외정세의 향방을 가늠해볼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유훈통치'를 공식 천명하며 김정일 노선에 따라 내부 경제난과 대외관계 개선 움직임을 이어나갈지, 아니면 불안정한 정치적 리더십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소극적 대외노선을 택할 지가 관전포인트라는 지적이다.
외교가에서는 김정은이 연초 일정한 시점에서 6자회담 재개라는 '정면돌파' 카드를 꺼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내년 강성대국 원년 선포를 앞두고 정통성 강화와 후계체제 조기안정을 꾀하려면 식량난과 경제난 해결이 시급하고 그러려면 6자회담 재개를 통한 '빅딜'이 필요하다는 분석에서다.
최근의 6자회담 재개과정은 김정일의 생전 마지막 '유훈'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다 김정은이 깊숙이 관여해왔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미ㆍ중을 중심으로 관련국들이 적극 지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으로서는 김정일 사망으로 대북 정책운용에 있어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다고 판단하고 북미 3차대화와 6자회담 재개에 전향적으로 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의 지위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6자회담 재개에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크다. 후 주석은 이날 노다 총리에게 "냉정함을 유지해가면서 6자회담을 재개함으로써 대화와 협력으로 비핵화를 실현해 한반도의 장기 안정을 도모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도 이 같은 6자회담 재개 흐름에 능동적으로 응하고 있다.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는 22일 베이징 회동에서 "추모기간이 끝나는 대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대화과정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공동 노력하자"고 뜻을 모았다.
다만 6자회담 재개 흐름은 북핵협상이라는 속성상 김정은 후계체제의 순조로운 이행과 연계돼있어 유동적인 측면도 커보인다. 김정은 체제가 안착하지 못하고 군부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된다면 6자회담 재개 흐름은 교착되고 다시 경색국면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을 시작으로 관련국들이 잇따라 새해의 정세운용방향을 발표하는 내년 1월이 동북아 정세의 방향을 좌우할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