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조직은 너무 크고 느리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7월 분리독립에 성공한 남수단의 살바 티르 마야르디트 초대 대통령에게서 선물받은 흰소를 비롯한 여러가지 재미있고 비유적인 장면을 동원해 유엔에 대한 개혁 의지를 내비쳤다. 14일 밤(현지시간) 유엔본부 인근에서 열릴 출입기자단(UNCA) 주최 송년 만찬에서다.
이 자리에서 공개된 영상에는 남수단에서 선물받은 흰소가 사무총장 집무실의 회의 석상에 함께 있는 그래픽 장면이 나온다.
반 총장은 "이 소를 보면 그동안 비판론자들이 유엔을 향해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것은 너무 크고 느리며 낭비가 심하다는 것"이라고 운을 뗀 뒤 곧 이어 "하지만 이 모든 비판도 `헛소리'(bull)"라는 말장난으로 참석자들의 웃음을 유도했다.
수단 대통령이 반 총장에게 선물한 흰소는 `반기무'(영어 `moo'는 소가 우는 소리)라고 명명돼 현지에서 사육되고 있다.
영상에는 반 총장이 집무실에서 한 아시아 국가 외무장관과의 회담 직후 카메라를 직접 꺼내드는 모습도 등장한다.
자동으로 맞춰진 카메라를 수북이 쌓인 책 위에 올려놓은 반 총장이 재빨리 외무장관 옆으로 다가가 포즈를 취해 보지만, 시간이 길어진데 지친 외무장관은 이미 자리를 뜬 이후다.
결국 사진에는 반 총장만 남았고, 만찬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포복절도했다.
두번째 임기(5년)를 앞둔 반 총장의 개혁 메시지는 어느 때보다도 확고하고 강렬했다.
총장실 부속실에 마련된 싱크대 앞에서 직접 앞치마를 두른 채 설거지를 하는가 하면 외부에서 걸려온 전화도 직접 받고 문서 복사도 직접 하는 모습도 영상에 담았다.
비서진을 대폭 축소함으로써 경비절감에 솔선 수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실제로 반 총장은 유엔 사무국에 파견돼 자신을 보좌해 온 우리나라 외교부 직원 일부를 내년 초에 귀국시키고 후임자는 받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기구의 일자리가 '철밥통'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되며, 이를 위해 자신부터 제살을 도려내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이날 공개된 영상에는 반 총장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자신의 상체 사진을 부인에게 보낸다는 것이 실수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G20 정상들에게 잘못 전달되는 장면도 나온다.
청중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지자 반 총장은 "이제부터는 `바깥 외교'보다는 `가정'에 더 관심을 두겠다"고 말했다.
대외적인 활동 못지않게 유엔의 집안단속도 중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만찬에 앞서 가진 송년 기자회견에서 반 총장은 해외출장 축소와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원격회의 등을 통해 내년 유엔본부 예산의 3.7%를 삭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엔을 출입하는 각국 언론사 기자들의 모임인 UNCA가 주최하는 송년 만찬은 유엔 사무총장도 참석해 서로 즐거운 얘기를 나누며 1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한해를 다짐하는 자리다.
반 총장은 지난해 행사에서는 자신이 몸에 달라붙지 않는 `사각팬티'를 입는다는 말로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미국 정부가 자신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벌여왔다는 사실이 위키리크스의 미 외교전문 공개로 드러난 것과 관련해 속옷에 대한 취향은 물론 자신의 신발 사이즈, 약지의 길이 등의 신상 정보를 세세히 공개하며 투명성을 과시했던 것이다.
앞서 그는 위키리스크가 해당 외교전문을 공개한 직후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유엔본부=연합뉴스)